문화 2동장이자 꽃집 아저씨 시인으로 등단

늘푸른 꽃집을 운영하는 권순갑씨
늘푸른 꽃집을 운영하는 권순갑씨
추석 명절 앞두고 불우이웃 돕기도 앞장
10월20일 대원예식장에서 시인 등단 기념식
자신의 맡은 생업에 성실하게 매달리는 모습은 ?10월20일 대원예식장에서 시인 등단
기념식
자신의 맡은 생업에 성실하게 매달리는 모습은 아무리 하잖고 보잘 것 업는 일로
보여질지라도 그 사람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흐름에 따라 프로가 돋보이는 것은 그만한 노하우가 축적돼 있고 그것을 선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일이든간에 프로의식을 갖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경건하게 만든다.
음성읍 읍내리에서 늘푸른 꽃집을 운영하며 문화 2동장을 맡아 분주한 하루를 맞고 있는
권순갑씨는 프로의식을 일상생활화하는 사람이다.
항상 투박한 웃음으로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는 권순갑씨는 문화예술에 관심도
많아 현재 한국화 수강과 끊임없는 습작으로 계간 문예한국 가을호에 시인으로 등단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행자부장광상과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한 꽃집 아저씨 권순갑씨를 본보에 소개해
보았다.
-편집자 주-

음성읍 읍내리 늘푸른 꽃집을 운영하는 권순갑씨
그는 스마일 맨이다.
그의 입가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가 있는 곳에는 떠들썩하다.
거리낌없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에서는 천진난만한 삶의 냄새마저 진뜩하게
배어나온다.
그는 주위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도 적극적이다.
내주위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으로 끌어안으며 묵묵히 몇 년째 이웃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특히 추석명절을 앞두고는 불우한 이웃에게 쌀과 밀가루를 전달하고 격려해오고 있다.
음성읍 읍내리 문화 2동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그의
성품때문이다.
그는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투박하게 웃어제끼며 유머스런 인정을 베풀고 있어 사람들과
격의없이 잘 어울러 두리둥실한 삶의 냄새를 풍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수 없듯이 적당한 깨끗함과 적당한 먹이감이 있어야 물고기의
생태구조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네 삶도 적당한 격식과 재미가 곁들여만 삶이 윤기가 날수 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랴
백만장자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가 반추되지 않는가.
권씨의 삶의 구조는 단순한듯하면서도 장자의 도를 실천하듯 평범한 듯 하면서도 우리네
범부의 일상을 초월한 듯 느낌을 지울수 없을때가 많다.
그에게 이런 동양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삶의 냄새가 풍겨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의 가슴속 깊은곳에 흐르고 있는 먹물 그득한 내면의 세계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매주 3일은 동양화에 몰두한다.
시를 쓰기도 하고 동양화도 그리는 가운데 자신의 예술적 끼를 발산하려는 욕구는 정열로
뜨겁기까지 하다.
그의 절친한 지인은 반영호 시인이다.
친구지간이기도 한 이들 두사람은 예술에 함께 참여하면서 예술적 비평가이기도 하다.
권순갑씨가 쓴 시에 대해 반영호 시인은 세밀하게 살피며 시어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켜
주는 조언자로서 역할을 톡특히 해내고 있다.
때로는 반숙자 수필가와 증재록 시인도 문학적 열의를 보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낮에는 꽃배달로 분주하다.
아내와 함께 꽃을 만지는 권씨의 정성은 공이 많이 들어간다.
권씨는 아내를 끔찍하게 아끼는 자칭 공처가이기도 하다.
하기야 요즈음 자칭 공처가라고 않는 이를 지칭하여 간큰 남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으레
엄살떠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권씨는 아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중에
한사람이다.
그의 시에서도 이런 냄새가 풍긴다

비에게

이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줄
그토록 소망하며 고대하고
간절했던 님.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를 연주하며
님이 오십니다.
때론 원망이 대상이었지만
희망이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이별뒤의 만남이었기에
반가움보다 설렘으로
벅찬 감격의 눈물이 넘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님.
이 가슴에 흠뻑 내리소서
가슴밑창 깊이 패이도록...

이런 그의 시작연습은 계간 문예한국 가을호에 시인으로 등단하는 감회를 맞게돼 오는
10월20일께 등단 기념식을 가질 계획이다.

꽃집은 아내의 도움이 커

권씨는 아내 이상례씨를 지난 79년 만나게 되면서 결혼생활을 하게됐다.
권씨 부부의 자녀로는 장녀 경이양(서원대 기악과 재학)과 남용군(충주고 3년)등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부모에 속썩임없이 무럭무럭 자라주는 것을 그저 대견하게 여기고 있다.
권씨가 꽃집을 운영하게 된 것은 아내의 권유가 컸다.
권씨는 대한 지적공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가 10년전 퇴직하여 꽃가게를 열었다.
지적공사를 퇴직하게된 동기는 장남으로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되는데 타지방으로의
인사이동이 잦아 그때마다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할수 없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꽃가게를 운영하게된 것은 아내가 한동안 취미로 꽃꽂이를 배웠고 상당한 솜씨를 갖고
있어서 꽃가게를 생각하게 됐고 자신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던중에
아내와 의견일치를 보아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서 꽃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꽃가게를 운영하면서도 동네 이장일을 7년이나 엮임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은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 지역의 문화 활동이 미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음성문화예술협회를
재건하고 미술협회 창립과 문인 협회를 출범 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일을 맡으면 거침없이 달려드는 성격에 1999년 음성군에서는 최초로 어린이날 큰 행사를
주관하여 치루었다.
대도시에 어린이들은 어린이날에 여러 가지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져 즐거운 어린이날을
맞이 하지만 지방에서는 예산문제라든가 다수의 자원봉사자 확보 문제로 일반
사회단체에서는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어린이날 행사를 공동으로 주체하는 측은 당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보수계층의 어른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색깔론으로 칠해진 교직원 노동조합이었다.
하지만 권회장은 어린이들이 하루를 즐겁게 보낼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며 이날
행사에 군수의 축사와 군의회 의장의 격려사를 이끌어냈다.
머리가 하늘 끝 까지 닫겠네라는 주제로 열린 어린이날 행사에 떡볶이, 오뎅, 빵, 우유등의
먹거리 제공과 소방서의 협조로 고가 사다리 타보기 바디페인팅 등 평소 접해보지 못하던
다양한 체험을 할수 있는 행사들을 제공하여 어린이들을 기쁘게 하였고, 이런 거대한
행사를 치른일은 두고두고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행사를 추진한 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권씨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를 써왔다.
꽃을 꽂으면서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주변에 애경사에 화환을 배달하며 사람들의 생과
사를 하루에 몇 번씩 체험한다.
사람들의 생일날이나 진급 개업에는 축하의 화환을 보내며 기쁨을 나누고 돌아서면 가족을
떠나보내고 애곡하는 상가 집에 조화를 날으며 삶의 무상함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되풀이
한다고 한다.
이런 극단적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틈틈이 글로 적어 놓은 것이 어느덧 한권의
시집이 되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꽃을 배달하며 시를 쓰는 권순갑씨 그의 생활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를 배운다.
그가 배달하는 것은 단순히 보기 좋은 꽃만이 아니라 인생의 향기를 날르는 아름다운
인정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