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명화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다지만 농사짓는 법이 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뿌리는 농사꾼의 자식 이었나 보다. 결혼 하고서 다시 시골로 이사 온지 10여년이 넘었다. 도시와는 다르게 계절의 변화를 농사를 기준으로 생각 하게 된다. 움츠리고 있던 겨울은 경운기 소리가 비로소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생긴 모양은 다 다르지만 파릇한 모종이 시장에 나올 때가 진정 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해마다 봄이면 들뜬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몸살을 앓았다. 모종을 보면 올해는 꼭 심어야지, 심을 수 있겠지 하다가 해마다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럴때마다 시장을 지나는 길이 있으면 그 예쁜 모종을 외면한 채 지나치곤 했다.

그러다 전원주택을 짓게 되었다. 10년을 넘게 원했던 밭이 생기게 된 것이다. 텃밭이라야 손바닥만 하다. 가지와 토마토를 두 포기씩 심고, 고추는 여섯 포기, 나머지는 고구마를 심었다. 콩은 생각 했던 대로 밭둑에다가 심었다.

다른 집들에 비해서 한 달 가량은 늦게 심었지만 열의는 여느 농사꾼에 뒤지지가 않았다. 잠이 많기로 치자면 따라 올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새벽이면 밭으로 나갔다. 한두 시간 풀을 뽑다 보면 이른 시간인데도 온몸에 땀이 났다. 집에 와서 찬물을 끼얹고 나서의 상쾌함과 뿌듯함은 어디에도 비교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겼다. 어쩌다 집안일 때문에, 비가 와서 하루 이틀 빠지다 보니 풀은 주체 할 수 없이 자랐다. 본격적으로 늦장마가 시작되면서 풀이 작은 밭을 다 차지 해버린 것이다. 애써 심은 농작물을 풀한테 다 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부터 풀과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새벽에 한두 시간씩 일찍 퇴근 하는 날에는 해가 넘어갈 때까지 싸웠다. 문제는 풀만이 아니었다. 날아다니는 모든 것이 다 무는 것이었다. 얼굴이며, 반팔과 토시사이의 틈새도 비집고 물었다. 벌레도 전투적으로 덤볐다. 이렇게 풀과 각종 벌레들과 씨름을 할 때였다. 밭 한쪽에 베어 놓은 풀 더미를 치우려고 하다가 큰 지렁이를 보았다. 들고 있던 낫을 집어 던지고 혼비백산해서 밭에서 나왔다. 이제 이 일을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에 T.V에서 지렁이에 대해서 방송을 했다. 어느 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큰 상자를 만들어 놓고 지렁이를 사육하고 있었다. 처치 곤란인 음식 쓰레기를 먹이로 주고 있었다. 지렁이가 지나다니는 길로 산소가 공급되고, 흙이 부드럽게 된다. 또한 배설물이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고, 유익한 미생물을 살게 해서, 흙을 살리고, 흙이 우리를 살리게 한다. 나를 놀라게 하고, 내가 그린 삶의 한 부분을 수정 하게 하려한 그 생명체가 그리 고마운 존재였단 말인가.

이렇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보 농사꾼에게도 흙과 비, 바람, 햇빛 등 모두가 결실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끝물 붉은 고추는 갈아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미처 익지 않은 파란 고추는 장아찌를 담았다. 완전히 다 영글지 않은 서리태콩이지만 뽑아서 꼬투리를 땄다. 고구마를 캐러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다. 다른 집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심은 터라 걱정이 되는 반면 기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한 줄기에 서 너 개씩은 달렸다. 방금 캔 고구마를 가을 햇볕 아래에서 씻었다. 보라색이 나는 붉은 빛은 그 어떤 화가도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다.

대파는 더 추워지기 전에 뽑아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흙을 파다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았다. 전처럼 농기구를 내던지고 달아나지 않는다. 밭에 놓아 주고 밭을 살려 달라고 말한다. 이만큼 호의적이 된 데는 올 한해 나름대로 흙과 전쟁을 치룬 결과이다.

어느 작가의 음식산문집에서 지렁이가 운다고 했다. 고운소리라고 한다. 들었을 수도 있는데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르는 그 소리. 나는 언제쯤이면 흙과 친해져서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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