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순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눈도 많이 와서 빙판길은 예사이고 눈으로 인한 사고도 많았다. 그 추운 계절 마음을 녹여주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얼마 전 큰 아이와 다큐멘터리‘울지마 톤즈’를 보았다. 이 태석 신부와 톤즈 마을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남아프리카 수단은 20년 동안 내전이 지속되다가 지금은 독립을 앞두고 있다. 굶주림과 전염병에 지쳐 있는 수단의 톤즈 마을 사람들에게 고 이태석 신부는 희망의 씨앗이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평탄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내면으로 스며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불길을 끌 수 없어 다시 신학교를 가서 사제가 되었다. 그는 왜 자원해서 아프리카로 갔을까. 톤즈 사람들의 눈동자는 맑으면서도 슬퍼보였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외부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온 몸으로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이 신부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메아리로 남았다. 음악을 좋아한 신부는 가난한 톤즈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학교를 세워 가르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의사이고 교육자이고 거룩한 사제였다. 또한 오랜 전쟁으로 거칠 대로 거친 사람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하기 위하여 브라스밴드를 구성하여 직접 지도 했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에는 국경도 없고 언어도 중요하지 않음을 느낀다. 한 생각과 몸을 움직이는 것은 진솔한 마음이고 그 마음이 많은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 나를 본다. 가끔은 고슴도치를 품기도 했다. 가시를 날카롭게 세워 스스로를 찌르기도 하고 때론 움츠리고 드러내지 않았다. 가시를 곧추 세워 짜증을 내는 날도 많다. 날 세운 가시를 보듬어 친구로 만들거나 툭툭 털어내야 되지만 상처가 두려워 고깝게 받아치곤 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자기희생을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온 몸을 바쳐 봉사정신을 보여 준 그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톤즈 마을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그의 초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소박한 미소가 잔잔하게 전해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처럼 독도 품지 않고 마음의 꽃을 피우는 그의 미소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꽃을 피게 한다. 톤즈 사람들의 마음에 피었던 꽃은 그에 대한 감사와 애도의 눈물이 되어 발길을 모으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은 그 누군가와 함께 있어준다는 것, 그것은 마음으로 피우는 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씨앗이라고 믿는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타인에게 꽃이 되어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고민을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기심이 팽창하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죽음으로 마친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통하여 그가 남긴 사랑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깨워주는 종소리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울리고 있는 저 종소리는 함께 가라, 함께 가라 메아리치고 있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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