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숙

큰딸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었다. 자식이 성장하면 제 짝을 찾아가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건만 마음의 준비가 없었나보다.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상견례 날엔 무슨 옷을 입고 나갈지 청첩장은 얼마나 준비하여 누구에게 보낼지로부터 시작된 걱정은 결혼식을 마치고서야 끝이 났다.

세상이 변하고 가치관이 바뀌어도 마음은 여전히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딸에게 연애 함부로 하지 마라. 상처받는 것은 언제나 여자다. 너를 용인하고 이해하는 것은 네 친구들이지만 평판하는 것은 부모세대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나이에 받은 상처가 평생을 따라 다닐까봐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앞서서 했다. 대학 입학하고 나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고지식한 엄마는 딸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 아이는 숙연한 얼굴로 “그 오빠가 험한 서울에서 저를 지켜줄 유일한 보호자라고 생각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했다. 말처럼 그 남자 친구는 7년간 딸 아이 곁에서 착실한 보호자 노릇을 하다가 남편이 되었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니 나도 그냥 사윗감이 좋았다. 짓궂은 사회자의 요구로 사위는 하객들 앞에서 “은별아! 사랑한다”라는 말을 천둥같은 목소리로 세 번 외쳤다. 내 딸을 평생 사랑하겠다니까 나도 같이 그 사랑에 빠져버렸다. 내 눈에도 콩깍지가 씌었나보다. 세속의 조건으로 볼 때 사위는 부모도 안계시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어느 것 하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딸의 첫 번째 결혼 조건인 ‘진실’을 만족시켰고 내 첫 번째 조건인 ‘성실’을 만족시켰으니 우리 모녀는 만족한 남편과 사위를 얻었다. 가진 것은 비록 없어도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나를 기분좋게 했다.

결혼하기 전날 신혼 여행비를 준비하며 딸에게 편지를 쓰던 남편은 느닷없이 많은 눈물을 쏟아냈다. 결혼하는 날 아빠가 엄마보다 더 서운해하고 눈물을 흘렸다더라는 다른 집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억지로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나올 까닭이 없다는 거였다. 무덤덤한 부정도 딸의 결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약해 지는 모양이다.

스물 일곱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선택하여 가사와 직장일을 병행하겠다는 딸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러면서도 출근하기 바쁘다고 남편 아침밥 안해 주면 절대 안되고, 밤늦은 시간까지 혼자 깨어있지 말고 남편과 함께 잠들라며 친정 엄마는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너무 일찍 결혼해서 아깝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는데 진심으로 아깝지 않다. 엄마품은 이미 대학입학 했을 때 떠났고 이별 연습은 그때 충분히 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 결혼을 했든 안했든 변함없는 것은 내가 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딸을 보내서 아까운 엄마가 아니라 사위를 얻어서 행복한 장모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풀나풀 들어오는 딸 뒤에 서 있는 사위가 아들처럼 믿음직스럽다. 아니 이제 내 아들이다. 배 아프지 않고 키우는 고생도 없이 공짜로 아들이 생겼다. 길을 가다 돈 천원을 주워도 횡재한 기분인데 이런 횡재가 또 있나.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 사위가 식성이며 영화 취향까지 남편을 닮았으니 딸과 나는 마주보고 웃는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딸이 신랑을 골라도 제대로 골랐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위가 느껴보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숙제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