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준 수필가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도 부유하게 살게 되었단 말인가. 말짱한 옷가지들이 쓰레기통에 벌어지는가 하면, 거의 신품과 다름없는 가구나 가전제품들이 유행에 뒤진 것들이라고 마구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올이 조금 풀린 양말이나 스타킹들도 가차 없이 폐기처분되고 마는 세상이고 보면, 해진 양말짝을 들고 바늘로 꿰매 신던 그 시절은 아득한 신화로만 남아야 할 판이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어 버렸는가.

아무리 소비가 미덕이라고들 하지만 이렇듯 마구잡이로 버려지고 있는 물건들이 진정 풍요를 구가하는 징표일 수는 없다. 우리네 생활 주변에는 어제도 오늘도 끊임없이 멀쩡한 물건들이 쓰레기더미에 묻히고 있다.

옷감이 부족해 누덕누덕 옷을 기워 입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시절의 가난과 어려움을 그렇게 쉽사리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생활수준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이렇게 흥청망청 마구 소비해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정 쓸모가 없어져서 버려야만 할 문건들이라면 차라리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불우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라도 하는 편이 훨씬 보람되지 않을까.

그러나 헐벗고 가난하고 병든 주위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눈 감고 외면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실정이다. 버리기는 쉬워도 남 주기는 싫다는 것이다.

얼마 전, 충주 시내 번화가에 있는 어느 수입품 판매점 앞을 지나칠 때의 일이다. 화사한 차림을 한 젊은 여자가 가게 앞을 기웃거리더니, 출입문에 써 붙인 “수입품 판매점” 이라는 팻말을 보기가 무섭게 불쑥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문득 그 여인이 어떤 물건을 사려는가 궁금해져 슬그머니 뒤따라 들어섰다. 가전제품이며 옷가지 등 외국 상품들이 눈부시게 진열된 가게는 많은 부인들로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뒤를 밝은 그 여인은 한동안 이 옷 저 옷 뒤적여 보더니 가장 비싸게 가격표가 매겨진 외제 코트를 집어 들었다. 아무런 흥정도 없이 손가방 속에서 자기앞수표 몇 장을 꺼내 점원에서 넘겨주고는 코트를 싸들고 가게를 나가는 것이었다.

국산보다 열 배쯤이나 더 비싼 엄청난 값인데도 외제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아낌없이 거액의 돈을 뿌려대는 여인이었다. 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본 것만 같아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줌을 몇 백 원이라도 더 깎아보려고 애쓰는 많은 알뜰주부들의 면모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과소비 풍조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가슴이 터질 듯 들끓어 올랐다. 가진 것이 없으니 그런 호화 상품을 사들일 여력도 없지만, 그렇다고 심통이 나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외국 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구 뿌려대는 여행 경비도 선진국 여행객의 두 세배쯤은 더 많은 실정이라고 하니, 빈털터리가 허세를 부리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생활습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무엇이 그리 잘 났다고, 뭐 그리 큰 부자라고, 그토록 허풍선이 허세를 부려야만 체면이 서는 것일까.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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