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재영정
신후재영정

지정번호 : 도유형문화제 제154호

지정년월일 : 1986년 4월 28일

시대 : 고려시대

소재지 :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 209

 

신후재 영정은 정장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의 전신상이다. 복식은 숙종 연간의 제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초상화의 상용형식(像容形式)에서는 동시대의 다른 초상화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공수(拱手)를 취하지 않고 양손에 홀(笏)을 받들어 쥔 점, 긴 손톱의 형용 단령위에 각대를 나타내지 않는 점, 의자와 족좌대가 겹쳐진 부위의 불합리한 형태 표현 등이 특이하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후손가에 전해오는 바대로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에 가지고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점에서 초상화 연구의 주목할 만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신후재(申厚載) (1636~1699)는 조선조의 문신으로 본관 평산, 호는 규정(葵亭)이다. 현종 원년(1660)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올라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으나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삭직 되었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우승지(右承旨),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였다.

그 후 사은사겸봉봉청부사(謝恩使兼奉奉晴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강화(江華), 개성부(開城府), 유수(留守), 한성판윤(漢城判尹) 등을 지냈으며, 갑술 옥사(甲戌獄事) (1694)로 유배 되었다가 숙종 23년(1697)에 석방된 뒤 은퇴하여 충주(현:음성) 오갑에 들어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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