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지갑을 잃어 버렸다. 생일날 딸애가 용돈을 모아 사준 지갑이다. 실수로 잃어버린 지갑 때문에 며칠 몸살을 앓았다. 명품이란 꼬리표가 붙은 예쁜 지갑이었다. 주인을 찾아주지 않는 알지 못하는 사람을 원망도 하고 무엇보다 딸에게 미안했다

신문을 읽다보니 미국에서 돈을 최고로 많이 버는 청년재벌 세 사람의 기사가 났다. 서른 초반의 이들은 사업수완도 좋았지만 근검절약이 우선이었다.

집도 월세에 살며, 12달러하는 이발소를 애용한단다. 승용차대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돈은 은퇴 뒤에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덧붙이며, 명품에 대해 질문하니 명품이란 상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큰 집과 고급 승용차대신 봉사와 기부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기자는 설명했다.

또 다른 기사를 읽다보니 이태석 신부님이라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땡볕속의 톤즈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계셨던 모습을 T.V에서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그 기사에 관심이 갔다.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봉사활동을 떠난다며 두 쌍의 부부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서 봉사활동으로 생애를 마치신 거룩한 분이다. 어려운 활동을 하시면서도 행복의 비결은 작은 것 하나에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두 기사를 읽다보니 요즘 드라마를 떠올리게 된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모님은 복지시설에서도 사모님 대접을 받는다. 또 기자가 카메라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안는다든가, 노인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부와 봉사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런 일은 단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두 기사를 읽고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것이 명품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번 라디오에서 명품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짝퉁이 있다는 것은 명품이 있다는 증거다. 명품은 말이 없지만 짝퉁은 말이 많다. 짝퉁이 아님을 감추기 위해서 많은 변명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품보다 짝퉁이 많아지는 세상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에게도 명품이란 상표를 붙여주게 된다면 서로가 본인 이라며 내세우는 자가 많을 것 같다. 말로 표현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이 사람을 명품으로 만든다는 것을 간혹 잊고 살아간다.

만일 내 지갑이 딸애가 시장에서 사온 것이라도 몸살까지 앓으며 속을 태웠을까 의문스럽다. 아마도 내 인품으로 보아 아닐 것이다 미안한 마음은 있겠지만 아휴 속상해라는 한마디로 흘려버렸을 게다.

팔월 초에 아들이 군대를 갔다. 입대 전날 밤에 계면적은 듯 내민 선물은 지갑이었다. 며칠 전 아들이 엄마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냐고 물어 보기에 그냥 이러이러한 색이 좋다고 했더니 비슷한 색으로 고른 지갑이 무척 예뻤다. 그렇잖아도 군대를 보내본 선배들의 경험담으로 가슴조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미에게 감동을 안겨준 아들은 분명 명품이다.

그리고 지갑에 붙은 명품이란 꼬리표 때문에 호들갑을 떨던 어미는 틀림없는 짝퉁이다. 명품아들과 짝퉁엄마, 이제는 겉치장 보다 속을 채우는 명품엄마가 되고 싶다.

<가섭산의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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