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미

조상님들께 올리는 정성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보는 가족과 친지와의 즐거운 만남으로 가득했던 명절이 지나갔다.

스무 명이 넘는 식구들이 썼던 식기들을 다시 제자리로 넣어두고 며칠 동안 쌓인 수건이며 옷가지들을 세탁 하느라 오후 내내 바빴다.

북적거리던 집이 다시 조용해졌다. 만두를 쪄내던 커다란 찜솥이 베란다에 덩그렇게 있는걸 보니 허전한 마음까지 든다.

올해도 떡국에 넣은 만두가 맛있다고 칭찬을 들었다. 제일 힘든 만두소 준비를 도와준 아들과 딸아이에게 공을 돌렸다. 만두소를 준비하던 날, 남편은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하고 아이들은 TV를 보며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할 일이 많아 동동거리다 보니 나만 혼자 바쁜 것 같아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아이들에게 놀지만 말고 엄마를 도우라며 야단을 쳤다.

명절 때 마다 겪는 스트레스는 올해도 여지없이 조급한 마음을 부추겨 목소리가 커지게 한다. 작은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큰아이는 오랜만에 집에 와서 인지 다소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는데 한창 사춘기인 중학생 딸아이는 불만 가득한 얼굴이다. 그 표정에 못마땅해 하며 부추를 다듬으라고 내어 주었다.

제대로 다듬는건지 걱정이 되지만 모른척하고 내 일만 하는데 갑자기 딸아이가 제 오빠를 야단친다. 왜 그러나 했더니 다듬은 부추를 나란히 놓아야 한다고 그래야 씻을 때도 좋다고 가르치고 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제 할 일을 다 한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들어온 남편과 큰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 떡국에 얹을 꾸미거리 고기를 사는데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로 주문을 했다. 큰아이가 궁금했는지 이유를 묻기에 고기를 찢어야 하기 때문 이라고 말해 주니 역시 엄마는 결혼 18년차 경력인 주부답다며 너스레를 떤다.

다른 엄마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해서 처음부터 잘하지는 않았으니 많이 해본 것도 경력일 것이다.

뭐든 해보면 그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추를 다듬던 딸아이가 기특한 마음이 든다. 일이 바쁠 때 몇 번 시켰을 뿐인데 그래도 했던 일 이라고 야무지게 해내니 야단만 쳤던 내가 부끄러웠다. 멀리 떨어져서 있으니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는 큰애와 마음속을 알아내기가 힘든 사춘기 딸아이를 보고 부딪칠 때마다 속상해 하기만 했었다.

주부에게도 경력이 필요하다면 나는 과연 몇 점이나 될까. 공장 벽에 “경력사원 우대”라는 구인광고를 볼 때면 주부 18년차인 나의 경력은 얼마의 가치를 쳐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력과 실패와 성공의 반복 속에서 조금씩 쌓이는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살림의 경력자 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공감의 경력자가 되어야겠다. 남편의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이해해 주는 경력자 엄마라면 신문의 구인광고에 적혀 있는 문구처럼 늘 ‘대 환영’이 되지 않을까?

남은 만두를 비닐 팩에 조금씩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기름에 살짝 튀긴 만두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 얼른 만들어 주어야겠다.

<바람처럼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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