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숙

팔이 아파 한방 병원에 치료하러 다니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용두산 생각이 났다.

치료에 진전이 있어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산은 옛 고향을 찾아온 듯 설렘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진료가 끝나고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화를 갈아 신고 예전에 하던 대로 성큼성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이 형편없이 저하되어 있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땅에 붙은 듯 발자국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이 갈증이었다. 아직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내 목마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정한 사람들은 내 곁을 지나 오르내린다.

하염없이 서서 달려 내려가는 이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라가는 이의 배낭을 올려다본다. 오로지 물 한 모금 얻어먹고 싶은 염원 때문에… 결국 산 정상에서 초면의 아저씨에게 물을 얻어 마셨다.

낯선 서울 길을 혼자 찾아다닌 적이 있다. 심각한 길치라 복잡한 서울거리를 혼자 다닐 엄두를 못 내고 곁에 남편이나 딸이나 친구가 있어서 따라 다녀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 살다보니 늘 동행자를 곁에 둘 수는 없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혼자 길을 나서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 중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때 앞서 가던 아가씨가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백을 열고 무엇을 찾는 듯 했다. 그녀는 계단 옆에서 동냥하는 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빈 박스에 천 원짜리 한 장을 두 손으로 곱게 펴서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사건이 터지면 그들을 돕자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모금액이 쌓이고 자원봉사자가 팔을 걷어붙인다.

그런 이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내가 그 일원이 될 생각은 쉽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편한대로 단정 지으며 좀처럼 그 속에 나를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다.

20대 초반에 구걸하는 모자를 알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엄마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얻은 돈으로 생활하는 듯했다.

우연히 이 아이를 알게 되어 불쌍한 마음에 불러서 과자나 껌을 사 주면 아주 좋아했다. 나를 보면 스스럼없이 누나라고 부르며 다가올 정도로 친해졌다.

어느 날 그 엄마가 눈을 뜨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모자만 알던 비밀을 알고 나서 다시는 아이를 부르지 않았다.

세상에 속아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모습은 남루하지만 아이의 맑은 영혼과 교류하며 내가 잠시라도 그 아이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순수했던 내 마음이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세상에 거짓이 존재하는 줄을 알지 못했고 내 마음 가는대로 살면 그것이 정의인 줄 착각 했었다. 그 후로는 길거리의 불쌍한 이들을 보이는 그대로 믿어줄 수 없는 삭막한 감성의 소유자가 되었다.

딸 같은 젊은이의 진심어린 행동이 젊은 날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등산길에 물 한 모금의 간절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다시 한 번 천 원의 감동을 생각했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이 생명수가 되고 작은 지폐 한 장이 굶주린 이에겐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 상황이 어떻든 받는 이에게 소중하다면 굳이 핑계를 댈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날 지하철 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지갑을 열었다. 전철 안을 돌아다니며 승객들의 잔돈을 구걸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예전엔 그랬다.

돈을 주면 바보가 될 것 같아서 주변 눈치를 보며 애써 무관심한 척 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걸어 잠근 것은 지갑이 아니라 마음의 문이었다.

지갑을 열면서 마음의 문도 함께 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주관에 의해 당당하게 행동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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