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떠나면 행복해진다. 길 위를 달릴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영월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고도 미루기만 했다. 사소한 일들이 나를 잡아둔다.

그러던 차에 울산 사는 친구가 소식도 없이 찾아왔다. 둘 다 역마살의 주인공들이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영월로 향했다. 법흥사란 절이 있어 행복하고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어 가슴 아픈 곳.

내가 생각하는 영월이다. 친구 집이 김삿갓 면에 있다. 법흥사로 향하려던 마음이 김삿갓을 보고 가야한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방랑시인을 만날 생각은 못했는데,,,.

김삿갓면에 자리한 시선(詩仙)의 유적지를 찾았다. 입구부터 삿갓 모습의 돌이 자리하고 시인의 글이 나를 반긴다. “스무(二十)나무 아래 서러운(설흔)나그네 / 망할(마흔)놈의 집에서 쉰(五十)밥을 먹는구나 /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일흔) 일이 있는가 / 차라리 집에 돌아가 설은(서른)밥을 먹으리/” 걸식을 하다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숫자를 이용하여 표현한 시라고 쓰인 비석을 향해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곳곳에 김삿갓의 글들을 비석에 새겨 놓았다. 김병연은 김삿갓의 본명이다. (1807~1863 : 순조7년~철종14년)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복 김성수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았다.

조부에 대한 문제는 본인에게만 묻고 가문을 폐문한다는 결정이 알려지면서 모친과 함께 황해도 곡산을 떠나 광주 이천 가평을 전전하다가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하게 되었다.

실질 세력이 안동 김씨였기 때문에 삼족을 멸하는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떳떳하게 사대부로 지내지 못했다. 반가의 기풍과 안목을 갖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가문의 내력을 알지 못한 채 학업에 정진하여 영월 도호부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였다.

어머니로부터 집안 내력을 듣게 된 김병연은 자신이 조부를 비판하는 글을 써서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단다.

커다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며 걸인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시를 남겼단다. 많은 글 중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글도 많이 남긴 분이다. 위에 쓴 시도 아마도 세상의 사나운 인심을 나무라는 글인 것 같다.

난고정이 묘 입구에 있다. 김삿갓이 글을 쓰던 움막 같은 곳이다. 난고정을 지나면 김삿갓 묘가 있다. 전남 화순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는데 삼년 후 둘째 아들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한다.

하얀 민들레가 묘 주위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힘겹고 어지러운 마음을 세상을 떠나면서 두고 갔나? 모든 것을 버리고 새하얀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하얀 민들레로 피었나? 자연석을 상석으로 해 놓아 자연인의 묘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변에 조금 넓어 보이는 잔디밭이 있다. 시조대회를 해도 좋을 것 같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방랑시인에게 절을 올렸다. 이 나라가 바른 길로 갈 수 있고 국민들이 태평성대를 느낄 수 있게 보살펴 달라고 하면서.

많은 날들을 힘겹게 살다간 詩仙의 묘를 찾아 참배하고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오늘 날까지 추앙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안한 삶이었다면 벼슬로 한 생을 마감했겠지. 양심과 바른 정신이 후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 나오는 길 그의 삶을 뒤돌아본다. 혹자는 가족의 고생을 안타까워 할 것이다. 무책임을 나무랄 수도 있다. 가족은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 상황을 알면서도 떠도는 시인의 속은 어땠을까? 후대의 사람들은 각자 다른 시각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다. 내가 그였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헛되지 않은 삶은 어떤 것일까?

방랑의 시작의 동기는 가슴 아프지만 난 그의 주유천하가 부럽다. 천여 편이 넘는 시를 남기고 후대의 詩仙으로 추앙 받는 분께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한다.

나도 거침없이 살고 싶다. 어떤 것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평상심이 도라 했던가. 평범한 내 일상이 제일 큰 행복인 것을 이제 깨닫는다.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다가 보니 나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다.

내 속에 내재된 역마살을 핑계로 세상을 유람하면서 방랑시인의 흉내를 한번 내 볼까나?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