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자

 

동서울 행 버스를 탔다. 외사촌이 고회를 넘긴 나이에 사위를 본다고 해서 축하도 해주고 서울 구경도 하고 싶어서이다. 신록의 녹음 속에서 흙밭은 바쁘다. 생명을 싹 틔어 저마다의 끼와 사명을 발휘하려는 열정은 대지를 달군다.

나역시 그에 뒤질 새라 선택된 씨앗을 가꾸기 위해 제초작업에 손마디가 트도록 호미질을 했다. 어느 생명인들 소중하지 않겠냐마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 잡초다.

인정사정없이 풀과의 사투를 벌이다가 일손을 놓고 세계 사람이 다 모여 산다는 서울에 왔다. 도착하니 공기가 무거워 탁하게 느껴지고 더위가 따갑게 피부 속을 파고든다.

부대끼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빠져나와 건널목을 건너는데 바닷물이 밀려왔다. 나가듯 사람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인산인해” 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말같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사람 모이기가 쉽지 않아 사람이 그리웠는데 잠깐 동안인데도 머리가 아파온다.

서울 지리를 모르는 나를 위해 딸이 마중을 나와 있다. 많은 사람 중에서도 어미와 자식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타니 경로석에 앉으라고 한다. 딸을 보고 같이 앉아 가자 하니 안 된다고 한다. 요즈음은 젊은 사람은 경로석에 앉지 않은 것을 예의로 알고 있다고 말하며 자기도 엄마 나이가 되면 앉을 거라 한다.

몇 해전에 왔을 땐 젊은 젊은이들이 앉아 졸고 있거나 자는 듯이 버티고 앉아 있더니... 효스러운 분위기에 기분이 좋았다. 몇 정거장 가서 환승을 한 후에도 경로석은 비워져 있어 나이 먹은 예우를 받아 고맙기도 하고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빈자리인데 잠깐만이라도 좀 쉬었으면 하고...

외척이다 보니 멀리하고 지낸 날이 많이 낯설지만 반가운 얼굴들이 반겨준다. 내가 올 줄은 짐작도 못했다며 의외의 상봉이라고 야단법석이다. 외갓집 혼사에 와 보기는 내 생전 처음이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큰 딸이 아들 자취방이 있는 상계동으로 와 있어 그리로 오면 함께 시골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속으로 반기면서 언니한테 데려다 주고 집으로 가서 쉬라고 하니 저도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당일치기로 엄마 혼자 보낼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예식장에서 외가 친지들과 마신 소주 몇 잔이 손주 자취방에 돌아오니 취기가 돌아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몸은 가벼운 것 같으나 머릿속이 멍하다.

큰 딸이 서두른다. 빨리 움직여야 예약된 차를 탈 수 있다며 이것저것 치우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단다. 노원역에서 허둥지둥 7호선을 탔다. 덜 깬 잠이 내 눈 꺼풀을 스르르 내려 감겨 준다. 얼마쯤 왔을까? 환승하려면 내려야 된다고 해서 보니 건대 입구였다. 여기서 강변 가는 2호선을 탄다고 한다. 딸은 “엄마 빨리 서둘러야돼요.”7시 차를 예매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환승을 하려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돌고 돌아 타고 보니 시간이 없다고 딸은 안절부절못한다. 자기 혼자였다면 예약된 시간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며 원망 비슷한 투정을 한다. 내 동작이 굼떠서 앞에 간 차를 놓쳤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은근히 속에서 열이 치받힌다. 나 때문에 예약된 시간에 못 간다고... 내 자신을 닦달했다. 정신 차렷! 뛰자! 죽기 살기로...

구이역에 왔을 때 옆에 있던 내 또래 쯤 되는 아주머니가 어디를 가는데 따님이 동동거리냐고 묻는다. 음성 가는 7시 차를 예매했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런다고 하니까 시계를 보고는 “5분 남았는데요”하며 잘 하면 탈 수 있다며 나를 보고 “ 아직 탄탄한데요”한다. 무신코 나는 “나요 70이 넘었는데요” 아주머니 “네!? 그래요 정정하신데요?” 지하철 문이 스스르 열린다. “ 탈 수 있을 겁니다. 잘가세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뒤통수에 꽂힌다. 딸이 준 교통카드를 손에 쥐고 한 달음에 역사를 빠져나오니 사람들이 밀물썰물이 되어 이동되고 있다.

나는 힘차게 앞만 보고 달려서 버스 앞에 서니 기사분이 차에서 내려오며 “13자리 비었습니다.”한다. 예약된 표 2장을 내보이니 빨리 타란다.

딸은 숨을 헐떡이며 “엄마 땜에 나 못살아”하며 차에 오른다. 아주머니의 “5분 내로”가 성공을 했다. 시간을 보니 6시 59분이다. 하루해가 차 속에서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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