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 시골의 생활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섯 시가 넘자 눈이 떠진다. 주섬주섬 겉에 우의까지 챙겨 입고 호미 들고 밭으로 간다.

우의를 입는 이유는 모기나 다른 벌레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다. 덥다는 것이 흠이지만 일단 안전하게 내 몸을 보호한다.

풀들은 자고 나면 생긋 웃으며 곡식으로 갈 영양분을 빼앗아 간다. 이웃 사람들은 제초제를 쓰라고 한다. 농약도 안 쓰는데 제초제는 더욱 못 쓴다.각종 질병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나만이라도 편리함보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고자한다. 몸은 무겁고 힘들어도 난 호미를 무기로 풀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풀을 뽑고 들어와 샤워를 하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보탑사에 가자고 한 아우가 왔나보다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대충 머리에 수건 두르고 나오니 그 아우가 아니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초로의 노인이 서 있다. 금방 밭에서 일하다 온 것 같은 차림이다.

누구세요? 하고 물었더니 동냥을 하러왔다고 한다. 어디서 왔느냐니까 충남에서 왔단다. 시장 하실 것 같아서 식사는 하셨냐고 물어보니 밥은 안 먹는다고 동냥만 달랜다.

사실 난 밥을 간식처럼 먹는 사람이라 해 놓지도 않았다. 배가 고프다면 얼른 밥을 하려고 물은 것인데 퇴짜 맞았다. 돈을 달라는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라하고 안으로 들어와 마침 사서 둔 요구르트 한 줄과 만원을 드렸다.

돈을 본 노인은 왜 그리 많이 주냐고 하면서도 얼굴은 함박꽃이다. 요구르트가 많다며 2개만 달라기에 다 드시고 이 돈은 꼭 밥 사서 드시라 하고 들어왔다.

도시 살 땐 저런 사람들을 가끔 보았다. 그렇다고 집까지 오진 않았다. 상가를 돌며 구걸하는 것이었다. 이런 시골에서 동냥을 하러 다니다니 의아했다.

그것도 밥이 아닌 돈으로 달라는 사람을 시골 사람들이 선뜻 내어 줄까? 더군다나 농사가 주업인 시골 사람들이. 그런데 이런 곳으로 다니는 걸 보니 약간 부족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노인의 동냥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최귀동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찬밥 남았음 줘! 했다는 분. 자신도 구걸을 하면서도 구걸도 못하는 병자나 약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는데,,,.

저분은 누굴 위해 이런 곳까지 동냥을 왔을까?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을까? 텔레비전에서 본 최귀동 할아버지의 모습과 노인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을 아는 사람들에게 인터뷰한 글을 읽고 정말 거지 성자란 생각이 든다.

유리 조각을 치우면서 아이들 다칠 것을 염려했단다. 비가 오면 비설거지를 해 주었단다. 남루한 옷차림이라고 방에 들어와 먹으라는 밥도 마당에서 먹었다는 증언들을 보면서 정말 큰사람이란 생각에 고개가 숙여졌었다.

구걸하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을 거두는 모습을 오웅진 신부님의 보시고 뜻을 함께 하셨단다.

비록 구걸을 하며 살았지만 나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은 위대한 성자였다. 그 위대함이 지금의 꽃동네를 만드는 초석이 된 것이다. 두 분의 서원이 더 큰 사랑으로 승화된 것 같다.

큰사람은 못 되더라도 주위에 작은 평안을 주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보탑사에 가서 부처님께 참배하고 주위를 살피는 사람이 되게 기도를 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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