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규(한일중학교감)

사고팔고(四苦八苦)
“人間”에 대해 사전에는 生物로서의 人間이라는 정의이외에 "人間이 살고 있는 곳. 世上, 社會, 이웃” 等 人間을 空間的 時間的으로 파악하여 해설하는 것이흥미롭지 않는가 ?...
불교에서 말하는 人間은 범어인 “마누샤” 이다. 마누샤는 生命이 있는 것이 윤회 (輪廻) 하는 한 期間으로 인경(人境:인간과 인간사이)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누샤도 한역(漢譯)인 인간(人間)과 함께 복수적(複數的)으로 표현되고 있다.
人間이 人間일 수 있으려면 “많은 사람과 접촉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 준다”라는 人間觀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人間은 “人生과 세간(世間)”을 줄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人間은 “人生”이라는 時間的인 면과 “세간”이라는 空間的인 면을 同時에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人間일수 있다고 생각한다. 時間이나 空間은 모두 추이와 變化가 무상하다 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人間이 人間으로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고뇌가 따르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다.
卽 時間的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상과 같은 時間的인 네 가지 고통 이외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對外的인 관계 卽 空間的인 접촉이 원인이 되어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 愛別離苦(애별리고),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수 없는 괴로움 怨憎會苦(원증회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는 괴로움 求不得苦(구불득고)의 세 가지 괴로움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모두 合치면 일곱 가지의 괴로움 七音(칠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오성온고(五盛蘊苦)”를 여덟 번째 괴로움 第八苦 로들 수 있다.
오성온고(五盛蘊苦)란 오온(五蘊)에 對해 自己 中心的인 집착을 하는 한 모두가 괴로움 뿐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고대 印度의 독특한 발상법으로 앞에서 말한 일곱 가지 괴로움에 병행하여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곱 가지 괴로움의 총칭(總稱)이라고 생각된다. 卽
오성온고(五盛蘊苦)는 “ 번뇌를 지닌 우리들의 심신이 통틀어 괴롭다” 고 人生苦를 중합하여 말하는 것이 정설(定說)이라 하지 않겠는가 ?.
그러나 오성온고를 “오온성고” 卽 人間의 몸과 마음을 형성하는 오온에서 생기는 괴로움이 더해 아는 것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病들었을 때에는 病을 괴로워하지만 建康을 주체 스러워 하는 사치스러운 괴로움도 실제로 있을수 있다.
재산이 없을 때와는 달리 富者가 되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많은 괴로움이 생기게 되고 時間이 없다고 또는 배추잎(?)없다고 궁색을 떨 은들 우리는 아마 百年知己 로서 자주 만나 회포를 풀어 즐거운 나날이 되도록 함이 바람직 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경전(經典) 에도 “밭이 있으면 밭을 걱정하고, 집이 있으면 집을 걱정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진 자, 부유한 자는 각각 건강이나 재산에 집착함으로써 괴로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설(異說)이 되겠지만 나는 오온성고를 “욕심이많은 데서 생기는 괴로움” 이라고 나는 받아들이고 싶다.
어쨌든 生, 老, 病, 死,의 네 가지 괴로움과 앞에서 말한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성온고(五盛蘊苦)의 네 가지 괴로움을 합쳐서 “팔고(八苦)”라고 부르지 않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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