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자님
고모님이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흰둥이에게 집을 맡기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왔다. 건강하시던 고모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전깃줄에 모여 재잘대는 참새 소리도 잎새를 털어내는 은행나무도 마음을 어수선하게 한다.
고모님을 뵈오니 듣던 대로 생이 다 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목수가 차서 잔뜩 불러진 배를 안고 숨을 가쁘게 모아 쉬면서도 손자며느리 보실 걱정을 하신다.  덮고 있는 이불이 예단으로 보내 준 것이라고 힘없이 자랑하신다. 눈빛 같이 하얀 차렵이불 속에 고모님의 살빛이 검게 보여 시야가 흐려진다.  앉아 있기가 힘들다며 내 손을 잡고 쓰러지듯 누우면서 손이 따뜻해서 좋다며 당신 손도 따뜻해야 될 텐데 하면서 눈을 감고  “자아알 가-아”  모기소리 같다.
울적한 마음으로 집에 오니 흰둥이가 나와서 맞아준다.  아차! 일냈구나! 흰둥이를 붙잡고 둘러보니 토끼장에 매어 놓은 암탉이 죽어 있는 게 아닌가. 개의 습성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옆에서 예쁜 짓하며 먹고 놀던 가족을 인정사정없이 물어 죽인 것이 화가 나서 흰둥이를 때리면 혼내 주는데 수컷이 죽은 암컷 주위를 돌며 “꼬꼬꼭 꼬오옥” 울어댄다.  그 모양이 발을 구르며 통곡하는 것 같다.
우리 집에는 흰둥이 내외와 새끼 남매, 토끼와 오골계 한 쌍이 있다.  얼마 전 뒷집 할머니가 흰털을 가진 암컷을 주셨는데 오자마자 알을 잘 낳았다. 내년 봄에 새끼를 품게 하려고 수컷을 사다 짝을 지어주어 사이좋게 지내던 터였다.  혼자 알을 낳을 땐 씨눈이 없고 노른자위가 힘없이 풀어지고 껍질이 단단하지 않더니 수컷이 온 후에는 알이 단단하고 씨눈이 찰지게 붙어 있었다.
죽은 암놈을 치우려고 집어 드니 수놈이 달려들어 손등을 쪼아댄다,  ‘가련한 것, 못된 놈 만나서 짝을 잃었으니 그 원통함을 어디대고 하소연 할까?’  이렇게 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까 수놈에게 미안한 같이 울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오골계는 아시아가 원산지며 체질이 약하나 뼈가 강하고 지방이 없고 사이 검다.  풍증, 습증, 허약증에 좋다고 하여 약이나 보신용으로 쓰이는 귀한 닭이다.  체구가 작아서인지 새처럼 지붕 위나 나무에도 잘 날아 오른다.
동작이 민첩해서 엉성한 우리에서 쉽게 빠져나와 붙잡기가 힘들다.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관리하기가 힘들어서 내게 준 것은 아닌가 하고 고맙게 받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좁은 틈새로 나와 알을 제멋대로 낳고 말썽을 부려서 암놈을 매어 놓았더니 흰둥이가 물어 죽인 것이다. 수놈은 번식의 자유를 주려고 풀어 놓아 살아남았다.  매어 놓지만 않았다면 사냥개가 와도 물려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 수놈은 제 기분대로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며 나의 애간장을 끓인다. 수컷은 훤칠한 장닭의 체구는 아니지만 털빛이 원앙새같이 화려하고 앙증맞아 “화초 닭”이라고 불려진다. 까마귀는 털은 검어도 속살을 회다고 하는데 하얀 털의 암놈은 속살이 검다. 수놈도 오골계 혈통이라서 살은 검지만 붉은 머리털에 금색 목두리, 청남색으로 늘어진 꽁지털이 보기 좋아 보는 이 마다 원앙새 한 쌍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수놈은 짝 잃은 슬픔에 검은 속살이 아주 검댕이가 되는 건 아닐는지.
TV에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많지만 짐승만도 못한 기사가 툭툭 나올때는 못 쉰 수탉의 울음소리가 더 애처럽게 들린다.
고모님은 슬하에 5남매를 낳아 길러서 청혼시키고 셋째 아들이 며느리를 보는데 중한 병이 들어 고생을 하시지만 다복한 분이시다.  고모부님이 옆에서 간병을 해 주고 있으니 많이 위안이 될거라 믿는다.  하지만 고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고모부님은 슬픔과 외로움을 어찌 감당 하실는지...
내 곁에서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이 오늘따라 야위어 보인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슬픈 이별이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우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잠든 남편의 따뜻한 가슴에 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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