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

바람이 가을 숲에 든다
풀잎과 나뭇잎과 냇물과 산들과 함께
외로워 빛나는 빛깔과
쓸쓸해 붉어진 상처들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을에 물든다

숲속을 떠난 애기 강물이
약한 심지와 등불에 서로 기대어
수천의 반짝임으로 흐르는 일처럼
마른 손과 소박한 마음들이 모여
오랜 근심으로 얼룩진
쓸쓸한 등을 쓰다듬으며
가을 숲으로 흘러갈 순 없는지
사람이 사람의 마음에 물들어
저리, 고요하게 맑아질 순 없는지

이 가을, 저녁에 젖은 풀벌레 소리 따라
홀로 바람 앞에 선 고단한 이의 가슴으로 가서
가만히 손잡은
한 줄 기도로 물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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