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 명 현 <바르게살기운동음성군협의회장 >

“온정을 다 주고 하염없이 사랑한 사람으로부터 배신의 상처를 받고 질곡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분노와 미움대신 용서와 사랑을 주고자 한다.”
이 글은 음성지역에서 아무개 하면 익히 아실만한 분이-, 당신이 겪으셨던 고초와 그에 따른 마음의 일면을 어느 종교지에 기고한 내용중의 일부분이다.
평소 근심과 걱정, 고통과 상처 등 번민의 대상이 됨직한 낱말들과는 인연이 없을 듯 생각이 되던 분인데…, 그분께 질곡의 아픔을 간직할 만큼의 상처가 있었다니 참으로 의외의 일이거니와 그로 인한 분노와 미움대신 용서와 사랑을 베풀고자 한다는 그분의 크고 넓은 마음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은것은 아마도 내겐 그 만큼의 부족함이요, 왜소함일 것이다.
얼마전에 친구들과 함께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 한 친구가 자신과 가까운 주변 사람을 예로 들면서 “사람이 살면서 어디 분하고 억울한 일을 겪는 일이 한, 두번이겠는가 라고 하면서 그때마다 이를 삭이질 못하고 분풀이를 한다면 이 세상에 온전할 사람이 몇이
나 되겠느냐”고 하던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허나 말이쉽지, 어디 그렇게 간단한 일인가 내(本人)일이 아니니 냉정함이 있을 수 있고, 그 틈새로 점잖을 부릴 수도 있을 것이며, 객기 또한 가능 할 수도 있을 일이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날 동안을 민심(民心)의 중심에서 연일 상한가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리스트와 그 연장선에 있는 대통령의 처조카(이형택)와 검찰총장의 동생(신승환)이 관련된 여타한 새로운 사실들이 이런 저런 사람들의 이름과함께 연일 TV화면과 신문지상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누구 한사람 “내 탓이요”라고 외치는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면피를 얻고자 함인지 아니면 이제는 볼일(?)이 끝났다는 뜻인지 줄줄이 물고 들어가는 볼썽 사나운 모습에서 왠지 찜찜하고 개운치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부탁하러온 사람들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다는” 말로 세태(世態)를 조명해주던 검찰의 고위인사(심재륜 고검장)가 있었다.
“무사는 얼어죽더라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격언을 취임사에 인용하던 검찰총장의 속내(心)에서 사람이 사는 그림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아서 이 겨울의 추위가 한층 더하는 듯 하다.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말며, 참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던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복잡 다난한 세상사이긴 하여도 최소한의 가치(價値)와 자존(自尊)을 지킴은 만물의 으뜸이라할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닐지 싶다.
삭막하게 변해만 가는 세태 속에 인심의 각박함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빛이 보이는 것은 이맘때쯤 남을 돕자는 자리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분들이 한푼, 두푼 내놓는 금액이 날로 커짐은 그래도 사랑이 있고 정이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아직도 우리주위에는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 이에게도 분노와 미움대신 용서와 사랑으로 베품을 더하는 따뜻하고 넉넉한 분이 함께 살고 있음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리다.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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