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준 음성교육지원청 교육장

거린내와 냇거름

 음성읍 용산리에 ‘거린내’라는 마을이 있는데 ‘고린내’라는 음과 비슷하여 부르기가 어색한 면이 있으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전혀 다르므로 마을 주민들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다.

지명에서 ‘거리’ 또는 ‘가리’가 쓰인 예를 보면 단양군 적성면의 ‘거리골(街谷)’은 단양과 제천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마을을 뜻하므로 ‘거리’는 ‘갈라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거리실’(영동 오탄), ‘거리곡’(중원 동량) 등의 예가 있다.

충북 옥천의 ‘가린여울(岐灘)’은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을 가리키고 있고 단양군 가곡면에 있는 ‘가린 여울’이 한자로 ‘가리탄(佳利灘)’으로 표기한 것은 ‘가리’의 의미를 알 수 없으므로 한자로 음만 표기했을 뿐이며 역시 여울이 갈라지는 의미로 보아 ‘가린’이 ‘갈라진다’는 뜻임을 알 수가 있으며 충주시 동량면의 ‘가린여울’도 같은 예라 하겠다.

보은 내속리면의 ‘삼가리고개’는 ‘세고개’라고도 불리는데 ‘능선이 셋으로 갈라지는 고개’라고 하며 보은 내속리면의 ‘삼가리(三街里)’라는 마을은 보은 상주 문경의 세 갈래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같은 예로 증평 율리에 있는 ‘율리삼거리’는 한자로 ‘삼거리(三巨里)’, ‘삼기리(三岐里)’로 표기하고 있어 오늘날 삼거리, 사거리, 육거리라고 할 때의 거리는 ‘거리(街)’가 아니라 ‘갈라진다’는 의미의 ‘거리’라는 옛말의 흔적임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거리(街)’의 수가 셋, 넷, 여섯이 아니라 세갈랫길, 네갈랫길, 여섯갈래길의 뜻인 것이다.

삼성면 선정리의 ‘냇거름’이란 마을도 ‘거름’이란 말이 유기물을 발효시킨 퇴비를 뜻하는 말과 음이 같으므로 ’고약한 냄새‘를 상상하게 되어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게 된다. 그러나 어원을 알게 되면 자랑스러운 마을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자로 표기된 것을 보면 선조들은 후손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하여 미리 힌트를 숨겨놓은 것 같다. 이곳이 ‘천기면(川岐面)’의 터이므로 ‘냇거름’의 한자 표기인 ‘천기(川岐)’는 ‘내가 갈라지는 곳’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지명은 제주도에 많이 보이는데‘마로냇가름’(제주 오라), ‘첫난가름’(제주 봉개), ‘뱅뒷가름’(제주 구좌) 등의 예로 보아 ‘갈라지다’의 어간인 ‘가르’, ‘거르’에 명사형 접미사 ‘ㅁ’이 붙어 ‘가름’, ‘거름’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거름’이 ‘거르다’, ‘거리다’의 명사형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천기면(川岐面)’을 ‘천기음면(川岐音面)’이라고도 표기한 것이다. 어느 국어학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가야(伽倻), 가락(駕洛)’을 ‘가르, 갈’의 음훈차(音訓借)로 ‘分, 岐’의 뜻으로 보기도 하였다.

따라서 ‘냇거름’은 ‘내가 갈라지는 비옥한 땅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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