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째 만석을 유지한 대구의 최부잣집은 재산 불가 원칙에 따라 만석 이상의 나머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였다.

환원 방식은 소작료를 낮추는 방법이었다. 당시의 소작료는 대체로 수확량의 7∼8할을 받는 것이 관례였으나 최부잣집은 남들같이 소작인들로부터 7∼8할을 받으면 재산이 만석을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그 소작료를 낮추어야만 했으므로 5할이나 그 이하로도 받았다. 이 정도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주변 소작인들은 앞을 다투어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나기를 원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기들은 혜택을 보게 되니까 말이다. ‘저 집이 죽어야 내 집이 산다’거나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 는 속담과는 전혀 다른, 저 집이 살아야 내 집도 좋아진다는 상생(相生)의 현장이 구현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어 아사 직전의 위기상황에 직면하면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넘기기도 하였다.

우선 먹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논값을 제대로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흰 죽 한끼 얻어먹고 논을 내놓았다고 해서 ‘흰죽 논’이란 말도 있었다.

쌀을 많이 가지고 있던 부자들로서는 이때야말로 논을 헐값으로 사들여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상극(相剋)의 방정식이다.

그러나 최부잣집은 이것을 금했다. 이는 양반이 할 처신이 아니요, 가진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자가 흉년에 논 사면 나중에 원한을 사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헐값에 논을 넘겨야만 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원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최씨 가문은 도덕성과 아울러 고준한 지혜를 가졌던 듯하다.

조선시대는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예를 강조하다 보니 사회분위기가 자칫 경직될 수 있었다. 그 경직성을 부분적이나마 해소해주는, 융통성 있는 사회 시스템이 바로 과객을 대접하는 풍습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같이 여관이나 호텔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기껏 묵을 수 있는 주막도 그리 흔치를 않았던 그 당시, 여행을 하는 나그네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양반집이나 부잣집의 사랑채에서 며칠씩 또는 몇 달씩 머물다 가는 일이 흔했다.

이들 과객들의 성분은 다양하였다. 몰락한 잔반(殘班)으로 이 고을 저 고을의 사랑채를 전전하며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학덕이 높은 선비나 시를 잘 짓는 풍류객이 있고, 무술에 뛰어난 협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풍수와 역학에 밝은 술객들도 있어서 주인집 사람들의 사주와 관상을 보아주기도 하였다.

주인양반은 온갖 종류의 과객을 접촉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지역의 민심을 파악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여행이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이들 과객집단은 다른 지역의 정보를 최부잣집에 전해주는 메신저 노릇을 하였던 것이며 최부잣집에서는 이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최부잣집의 1년 소작 수입은 쌀 3천석 정도. 이 가운데 1천석은 집안에서 쓰고, 1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 데 사용하였고, 나머지 1천석은 주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썼다고 한다.

1년에 1천석을 과객접대용으로 썼다고 하니 당시의 경제규모로 환산해 보면 엄청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원광대 사회교육원 조용원 교수의 글에서 추림)

나쁜 묘지를 이장시키고 좋은 자리를 잡아 장례를 치루게 해 보지만 분명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손들의 꿈에 험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거나 괴롭히는 조상 혼령의 형상을 본다는 사람을 간혹 보게 된다.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조상이 악령으로 변하여 자손들을 괴롭히는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이 한을 품지 않고 죽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한은 있되 원한(怨恨)은 품지 말고 죽어야 한다.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비수를 품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명당의 수수께끼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온갖 불효를 다 저지른 자가 천하 길지를 찾아 장사지낸다 한들 부모의 한이 서려 있는데 어찌 명당이 될 수가 있을손가?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고수들은 다섯수 이상을 내다 본다고 한다.

고수들 처럼 여러수를 내다 보지는 못 할 지언정 두 수 만 내다 볼 수 있어도 내가 던진 부메랑이 되돌아와 내 가슴에 꽂히는 불문가지(不問可知)가 내다 보일 것이다.

나눔의 삶을 사는 자야 말로 최부자 처럼 그 사람 잘 되기를 모든 사람들로부터 듣게 될 것이고, 그런 사람이야 말로 사회와 지역민들이 바라고 원하는 자 되어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떠 받들려 돈 한 푼 쓰지 않고 당선될 수 있는 행운도 따라 줄 것이다.

최부자집 이야기를 쓰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거풍토 뿐만이 아닌 사랑과 나눔의 싹이 우리 지역에 피어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그려보며...

<재미있는수맥이야기>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