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나영 충북음성가정(성)폭력상담소장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을 제정하고 젠더폭력 근절을 약속했다. ‘젠더’는 “사회 문화적 성(性)”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다시 말해 젠더는 성별 정체성이나 성별 역할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재구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 젠더폭력이란 무엇일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사회 문화적으로 부여된 여성성과 남성성을 바탕으로 약자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통칭하는 말이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강간), 성매매, 데이트 폭력, 스토킹 등의 범죄는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범죄 중 하나인데 대다수의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유엔은 젠더폭력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명명하고 1993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들의 피해는 신체적 폭력에 국한 되지 않고 정서적, 정신적 폭력과 통제, 경제적, 성적 학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앗아가는 사망에 까지 이른다.

지난해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상담소의 경우만 보더라도 가정폭력, 성폭력 관련 상담이 1,300여건을 넘었는데 피해자의 대부분은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 위치에 있던 여성들이었다. 성희롱과 성폭행 등의 피해 사실을 고백한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가 미국 연예계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도 한 여검사의 8년전 성추행 피해 사건이 SNS를 통해 폭로되면서 최근 방송계, 영화계, 문단, 예술계까지도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제 세상이 바뀌고 사회가 변했으니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말을 마치 진부한 말처럼 치부하면서 성차별에 관해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여성의 일반적인 지위는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개선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의미에서의 개선 일뿐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폭력이 여전히 곳곳에서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고 있다.

특히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경우 여전히 피해자들은 입을 열어 그들의 목소리를 다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우리 사회는 그동안 피해자들로 하여금 용기 내어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왔다. 피해자에게 어떤 특별한 이유나 결함이 있어서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가해자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따라서 부끄러움과 죄책감, 책임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 폭력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힘을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상대적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으로서 이를 지속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가정과 직장, 사회 구성원들의 무관심과 침묵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가 입을 열어 말할 수 있는 사회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올해 정부와 지자체에 대해 거는 기대는 폭력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해 나와 타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되어지는 안전한 사회의 기반을 제도적, 정책적으로 더욱 견고히 다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지자체 어느 후보자들의 정치 공약을 보더라도 젠더폭력근절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표명하고 그에 따른 예산과 지원을 약속한 후보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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