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나온다. 하수관이 터져 요 며칠간 하루에 두번 두 시간만 제한 급수를 했다. 첫 날은 도무지 물이 없어서 씻지도 못하고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둘째 날은 그냥 저냥 지낼 수가 있었다. 좀 불편하긴 했지만 새벽에 물이 나오는 시간 동안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식구들을 깨워 샤워도 하게 했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도 아낄수 있고 바지런하게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부지런한 꿀벌은 눈물 흘릴 시간이 없다.’ 그 말을 되새기며 바지런을 떨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제한 급수를 해서 사람들에게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아껴 써야 하는지도 알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물만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도대체 하수구관 하나 찾지를 못해 이리 불편을 주나?’ 밤낮으로 떠들에 대는 경비실의 방송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왜 늘 처음 마음처럼 되어지질 않는 걸까? 항상 글을 미리 쓰자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미리 준비 해야겠는데 늘 마음뿐이다.
또 살림을 알뜰하게 살아야 겠다고 하고는 항상 새 물건만 사다가 쌓는다. 냉동실에 먹지도 않는 음식이 수두룩하다.
냉장고 안에 썩어가는 채소들과 반찬 따위를 가끔씩 버리게 된다. 그럴 때면 죄책감이 든다.
할머니는 언제나 밥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된다. 살림 못하는 여자들이 밥 버리는 거야 하셨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그러지 않으셨다. 찬밥은 끓여 드시고 쉰 밥까지도 물로 씻어내고 드셨다. 우리가 그런다고 성화를 대면 괜찮다고 하시며 이거 먹어 안 죽는다 하셨다.
물질의 풍요로움? 그것이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고 여유있게 해 주었을 게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너무 물질에 얽매여 살고 편리함만 추구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당장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리수거 통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가득차서 수거통 밖에도 쓰레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제대로 분리해서 버리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 이 곳은 장농이나 쇼파같은 큰 물건을 버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어떤 부유층 아파트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단지 모양이 싫어져서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물건들을 그냥 내다 버린단다.
만약 이대로라면 우리는 아마 쓰레기 더미에서 헤어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다 보니 거기에 따라서 낭비도 심해지고 쓰레기도 넘쳐 난다.
우리가 좀 더 세상을 넓고 멀리 보아야 하겠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땅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어느 시인에 의하면 20%밖에 안하는 잘 사는 나라인구가 전세계 자원의 82%를 사용하고 있단다.
우리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써야 할 자원을 끌어 당겨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끌어당겨 살고 있다.
예전에 할머니는 새 옷을 사드려도 그걸 입지 않으셨다. 손주 손녀들이 왜 새옷은 입지 않고 헌 옷만 입느냐고 야단하면 죽으면 불 놓을걸 무엇하러 휘정거리냐며 그저 추접스럽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 먹는거 입는 것은 한이 없다고 하셨다. 그 말씀은 들었을 당시 보다 지금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나도 철이 드는 것인지? 옛말에 어른 말 그른 것 하나 없다고 했다. 요즘 우리가 항상 듣는 이야기도 또 아이들에게 힘주어 말하는 것도 아끼고 더불어 살자는 말이다.
그것을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는 몸소 실천하셨다.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께서 남겨주신 절약 정신을 커다란 유산으로 간직하며 사는 것이 현재를 사는 지혜임을 새삼 깨닫는다.
<가섭산의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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