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선(수필가. 무영문학회원)

태풍매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하루동안 우리의 시간을 가져보기 위해 총동문회로 모였다.

오선학군 부녀회장들이 점심을 맡기로 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오선초교 동문인 나는 마음만은 어느 곳 에 와 있을 옛친구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십 세 가 되면 주간 하는 기수가 된다. 앞으로 칠 년 만 있으면 주간 하는 기수가 될텐데 하면서 분주히 움직이는 선배님들을 본다.

이마평수가 넓어지고 주변머리가 없어지고 불룩 나온 뱃살로 허리띠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름살을 감추려는 듯 짙게 바른 파운데이션 밑에 굵게 패인 목의 주름은 무엇으로 감추려는지....

칠 년 후 내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해 함부로 웃지도 못하겠다.
삼십 년 전 운동장은 너무 넓어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찼다.
몸이 약하고 유난히 작았던 내게 운동장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넓었던 곳 이였는데 지금은 너무 작아 보여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서너 발자국 옮기면 끝과 끝이 다 을 듯한 이곳에서 우리들은 많은 꿈을 꾸었고 꿈을 실현시키고자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밭았다.

예전에 우리가 다닐 때에는 전교생이 천명이 넘었던 학교인데 백 명이 되지 않아 분교가 될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 그렇지만 동문들이 힘을 모아 스쿨버스를 사주고 근교에 있는 사람들에겐 전학을 권해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인구밀도가 높다고 한 가정 두 자녀 두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이 얼마전인데 이렇게 학생수가 줄어들다니 물론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 도 원인이 되겠지만, 보통 한집에 다섯 명에서 여섯 명이던 자식들이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두 명이나 한 명뿐이니 학생수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 생각에 잠겨있을 때 운동장에서는 선후배간에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이겨도 좋고 져도 기분 나쁠 것은 없다. 선후배가 어우러져,오늘 만큼은 마음껏 웃고 떠들며 놀아볼 일이다.

운동장에서는 공 차는 소리가 높고, 교단에서는 동문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기수별로 한 명씩 올라가 열창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데 우리기수만 보이지 않는다.

좀 서운한 마음에 보고 있으려니, 우리기수를 호명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 동창얼굴이 보이고 응원하는 여자동창도 보인다.
내가 부른 듯 가슴이 뛴다. 둘러친 앞치마와 빨간 고무장갑이 이 순간 싫다.

박 수치고 함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이런 여유도 잠깐뿐 뒤늦게 점심밥을 찾는 선배에게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함께 웃는 자신을 본다.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도 대 선배님이시다.

점잖게 앉아 후배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지켜보시는 모습이 여유로와 보인다.
인생의 여백은 노년이라고 한다.
여백은 써도 좋고 쓰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여백을 잘 활용하면 인생이 아름답고 노후가 풍요롭고 행복해 질 수 있다.

꿈을 꾸던 어린 시절에는 노랫말처럼, 외로움도 없었고 서러움도 없었으며 아침엔 꽃이 피고 밤엔 눈이 오고 들판에 산 위에 따뜻한 세상만 있으리라 믿었는데...
살면서 세상은 노랫말처럼 쉽고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잘 커나가던 공장에 불이 난 친구의 눈빛에는 힘겹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태풍피해를 슬기롭게 이겨낸 친구의 얼굴에도 어릴 적 꿈들이 묻어있다.

모두 어렵고 힘들어도 맡은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선후배 님의 건 승 을 빌어 주 듯 하늘은 높고 푸르며 태양은 빛나고 있었다.

우리의 모교가 분교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빌고 또 비는 가운데 하루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내년에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모두 안녕히 하기 전에, 용군이 너는 지금도 똥장군이야 호∼호 약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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