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교수 강동대 사회복지과

 
 

4.15총선이 끝난 지도 한 달을 넘겨 21대 국회가 시작되었다. 선거가 끝남과 함께 온갖 추문이 여야(與野)를 망론하고 넘치고 있다. 야당의 어느 청년대표라는 자는 선거인명부를 조작하여 정당을 만들었다 하고, 여당의 어느 비례당선자는 부동산과 관련한 추문으로 당선자 용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제명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더욱이 총선이 한 달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은 해소되기 보다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개표 관리가 엉망이었던 것이 드러나면서 총선에 대한 불신이 넓혀가고 있는 듯하다. 빵 상자에의 투표용지 보관과 훼손된 봉인테이프 등이 말해주는 투표보관함의 부실관리, 외국인의 투개표 참여 등 도저히 민주적 투표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의혹들이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선거의 정당성에 대한 진상은 시간이 지나면 사법부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과연 그 의혹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총선 이후 밝혀진 많은 추문 중에서도 압권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관련 시민단체 대표 간의 갈등은 분노가 아니라 허탈함을 느끼게 한다. 온갖 금전적 의혹은 한일관계를 위기로까지 몰고 갔던 그 사안들이 사실은 돈벌이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 역시 그 진위에 대해서는 검찰과 사법부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하겠지만 이들 운동의 순수성이 크게 훼손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국가적 망신이라 해도 과하지 않은 이 사건을 보면서 과연 언제까지 일제식민지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원천적 의문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말기부터 오늘날까지 한일관계를 중심으로 정리를 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이다.

첫째, 조선의 멸망은 고종(高宗)을 비롯한 무능한 왕정이 일차적 책임이 있다. 최근 일부 학자들에 의해 고종(高宗)이 개혁군주라는 미화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는 1919년 임시정부가 독립 이후의 정치체제를 공화정으로 설정하였다 데서 반증될 수 있다. 불과 멸망 이후 9년 만에 수립된 임시정부의 정치체제가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을 채택하였다는 것은 당시 선조들이 얼마나 조선왕조에 대해 미련이 없었던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둘째, 일제(日帝) 하에서 한반도는 근대화를 경험하였다. 구한말부터 시작된 전기, 열차 등 근대화의 물질문명이 한반도에 도래하였다. 물론 근대화의 수준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와 우리의 근대화의 경험이 시기적으로 대부분 일치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지역 읍·면의 지명을 쓰는 초등학교의 출발은 조선왕조가 아닌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제2차 대전 이후 거의 모든 식민지들이 본격적인 독립의 흐름을 이어갔고, 우리 역시 일제 패망과 함께 독립의 길을 걸어왔다. 이민족 간의 지배체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바람과 달리 비효율적 지배체제였다는 것이 이들 식민지들이 독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같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식민지 지배의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킨 큰 원인이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넷째, 1965년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사과의 뜻을 표하였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서도 1993년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었던 고노회담을 통해 사죄의 뜻을 표하였고, 직전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아베총리의 사과와 배상이 이루어졌다. 물론 일부 당사자들과 현 정부는 그 합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거사를 정리할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해방 75년, 조선멸망 1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당시 일본 제국주의 후손들이라 해서 지속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연좌제적 요구가 자칫 우리 자신의 국격을 떨어트리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예를 들어, 100여 년 전 노비 자손이 찾아와 사과를 요구한다면? 혹은 양반의 후손이라며 조상의 가혹행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하려 한다면? 과연 오늘날을 살아가는 후손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명예를 지키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은 좋던 싫던 우리와 이웃한 나라이다. 이웃사촌은 존재할지 몰라도 사이좋은 이웃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이다. 국가의 생존 앞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은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과거의 치욕을 씻는 방법은 침략국에 사과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보다 더욱 부강한 국가를 만들고, 세계인이 살고 싶어 하는 부러운 나라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과거에 매몰되기 보다는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며, 지난 아픈 상처는 우리 내부에서 보듬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일제(日帝)는 조선왕조를 멸망시켰지만, 일본(日本)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경제적 번영과 함께 한 좋은 이웃국가였음을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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