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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유교유적
총성 멈춘 70년, 평화와 통일은 어느 세월에....‘6.25 한국전쟁 70년’&‘무극전투’ 조명
김진수 기자  |  birst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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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5  0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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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우재전승기념관 모습.

“포성이 멈추고 한 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화신처럼 / 나는 꽃을 보았네 거치른 이 들판에 용사들의 넋처럼 /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 평화의 화신으로 산화한 전우여 너를 위해 꽃은 피고 / 먼 훗날 이 땅에 포성이 멈추면 이 꽃을 받치리 /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 오 나의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서양훈 작사, 장세용 작곡, ‘전장에 피는 꽃’ 가사 전문--

올해는 6.25 한국전쟁 70년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선제공격으로 전면전이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을 맺음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70년’은 기독교에서 ‘완전 회복’을 상징하는 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은 전쟁의 상처 회복과 치유 측면에서 여전히 제 자리 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다.

본지는 6.25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고 완전 치유를 기원하며, 6.25 한국전쟁과 우리 지역 음성군에서 전개된 전투를 다루려고 한다. --편집자 주--

   
▲감우재전승기념관 전시실-소여리 전투 모형.

■ 승자없는 전쟁, 깊은 상처와 후유증만 남아

6.25 한국전쟁은 미.소 냉전체제 아래 이권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항복으로 일본이 점령했던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분열되고 말았다. 북쪽엔 사회주의체제 소련이 점령했고, 남쪽은 자유주의체제 미국이 진주하며 이념대립이 생겼다. 1948년에는 남북에 각각 자유주의 체제 ‘대한민국’과 ‘공산주의 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이후 이념대립과 냉전이 고조되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경,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북한이 선제공격하며 전쟁은 발발했다. 이후 전쟁 개시 4일 만에 남한 수도인 서울이 점령당한 것을 비롯해, 파죽지세로 남하한 끝에, 경북 일부와 부산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북한 수중에 넘어갔다. 그러나 9월 11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연합군은 서울 수복과 평양 진격에 이어, 압록강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군 참전으로 전세가 밀려, 평양을 비롯한 북한 땅을 다시 내주고, 후퇴했다. 이후 소련 제안으로 진행된 휴전 회담은 약 25개월 넘게 진행되어 1953년 7월 27일, 남북이 주둔한 상황을 유지한 채 휴전됐다.

6.25 한국전쟁은 3년간 한반도 전역에서 남.북한을 비롯해 세계 16개국이 참전한 치열한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전투, 현리전투, 용문산전투 등을 꼽는다. 3년간 전쟁으로 인해 한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북한군 93만, 중공군 100만, 민간인 250만, 이재민 370만, 전쟁미망인 30만, 전쟁고아 10만, 이산가족 1,000만 명이 발생해, 당시 남북한 인구 3,000만 명 중 절반이 넘는 1,900여 만 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주요 산업기반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붕괴돼 남북 모두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전후 남.북간 이념대립과 체제경쟁 속에 상처는 치유되지 못한 채, 70년이 지나도록 좀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감우재승전기념관 전시실-유탄에 깨진 마을 종 모습.

■7월 5일 소여리 교전, 한강 이남 지역 최초 승리

6.25 한국전쟁 가운데 우리 음성군에서는 한강 이남 최초의 승리 쾌거를 전한 무극전투가 있다. 무극전투는 1950년 7월 4일부터 7월 10일까지 음성군 읍성읍 소여리와 금왕읍 무극리, 생극면 병암리 일대에서 감우재를 중심으로 벌어진 전투를 총칭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공격을 통해 파죽지세로 장호원에서 음성군 방면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제15사단(사단장 박성철 소장) 49연대를 저지하기 위해 국군 제6사단(사단장 김종오 대령) 7연대(연대장 임부택 중령)가 7월 4일, 방어망을 구축해 교전을 준비했다. 국군 제6사단 7연대소속 1대대 3중대(중대장:김명익 중위)는 7월 5일 오후 1시경, 음성읍 감우재(기름고개,유현)를 넘어온 북한군 15사단 49연대 첨병소대를 소여리 부근에서 유인.포위하여 섬멸했다. 이날 전투는 비록 소규모지만, 6.25한국전쟁사 가운데 남진하는 북한군을 퇴각시킨 국군 최초 승전보를 올린 쾌거다.

이후 국군은 7월 6일과 7일, 금왕읍 무극리를 탈환하고, 생극면 병암리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곧 북한군 반격으로 후퇴해 부용산과 무극리 남쪽 백야리 351고지에 진지를 구축한 국군 제6사단 7연대는 7월 8일, 제1사단 11연대에 진지를 인계하고, 원남면 보천리 방면으로 이동했다. 이때 대거 남하해온 북한군 15사단 병력을 맞아 국군 제1사단 11연대는 감우재에서 2차례 전투를 벌여, 적 1개 중대를 섬멸하고, 재차 공격해온 2개 중대도 격퇴시켰다. 7월 9일에도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이 재차 공격해 오자, 감우재에서 11연대 2대대는 또 다시 적을 격퇴시켰으나, 7월 10일 전력을 충원한 북한군의 대규모 총공격에 전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괴산 지역으로 후퇴하며, 6일간 전투가 막을 내렸다.

감우재 일대에서만 총 4차례 전투가 벌어진 결과 북한군 2,707명 사살, 170명 포로, 각종 포 24문, 박격포 7문, 차량 65대, 장갑차 7대, 기관총 55정, 소총 1,187정, 무전기 4대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반면 국군은 71명 전사, 113명이 부상당했다.

   
▲감우재전승기념비 모습.

■정확한 사료 정리.기념 사업 적극 펼쳐야

음성 무극전투는 다른 전투와 비교해 소규모 전투에 속할 뿐 아니라, 지역과 전략적 중요성에서 떨어진다는 평가에 의해, 안타깝게도 각종 6.25 한국전쟁사에 기록이 누락됐다. 그러나 무극전투는 전쟁 발발 10일이 경과하며 파죽지세의 북한군 기세를 꺾고, 패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거둔 최초 승전으로서, 국군과 국민들 가슴에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 쾌거였다.

음성군은 6.25전쟁 최초 승전보를 울린 무극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음성읍 소여리 산1-1 일대에 1986년 무극전적국민관광지를 조성하고, 2003년 11월 감우재전승기념관을 개관해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7월 5일을 전후해 전쟁체험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6사단 창건기념일을 맞춰 6사단을 방문해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무극전투와 같은 시기인 7월 6일 전개된 동락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충주시는 동락초에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매년 전쟁 관련자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음성군과 관련 단체에서 정확한 사료를 정리, 전쟁기념관 등 전쟁사에 기록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무극전투에 대해 군민들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각인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정기적으로 적극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감우재전승기념관-철모와 철조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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