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청주교구 ‘봉암성지’ 선포

맹동 봉현2리 맹동성당 봉암공소 전경.
맹동 봉현2리 맹동성당 봉암공소 전경.
맹동 봉현2리 맹동성당 봉암공소 모습.
맹동 봉현2리 맹동성당 봉암공소 모습.

천주교 신자 6명이 순교한 맹동면 봉암공소가 성지(聖地)로 선포됐다.

천주고 청주교구(교구장 장봉훈)는 11월 29일, 음성군 맹동면 봉현로 145.(봉현리 318-3번지)에 위치한 맹동성당 봉암공소를 천주교 성지로 선포한 것.

방축골과 계마대에서 거주하는 신자들이 모이는 봉암공소에서는 김암브로시오, 김성서, 민프란치스코, 이베드로, 김성회, 김요한 신자가 순교한 곳으로 알려졌다.

봉암의 ‘방축골’과 ‘계마대’는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이주해 와서, 교우촌을 이루고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던 마을로서, 당시 이곳엔 김백심(암브로시오.1794~1866), 송군명(바오로), 김경장, 이베드로 가족이 살았으며, 얼마 뒤엔 충주 광벌(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살던 민윤명(프란치스코,1822-1867) 회장 가족이 계마대로 이주해 왔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사목 순방 도중 방축골과 계마대에 들러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김백심(암브로시오)의 막내 아들 사도 요한을 신학생으로 선발해, 진천 베티에 있는 조선대목구 신학교에 보냈다.

이후 그는 베티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54년 3월 말레이시아 페낭 신학교로 가서 유학했지만, 1863년에 귀국하자마자 환속함으로써 성소의 결실을 얻지는 못했다.

방축골과 계마대 공동체가 박해자들에게 발각된 것은 1866년 병인박해 때였다. 충주 진영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이 들이닥쳐 신자들을 체포한 것. 그 결과 김암브로시오는 서울로 압송돼 1866년 순고했고, 그의 차남 김성서(파비아노)와 계마대의 민프란치스코 회장은 충주로 끌려가 1867년 초에 순교했으며, 이베드로는 1866년 수원에서 순교한 데 이어, 1868년 천안 복구정(천안시 북면 연춘리)으로 피신해 살던 김아브로시오 장남 김성회(바오로)와 막내 사도 요한(신학생 출신)이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고했다.

한국천주교회는 이곳 교우촌 출신 순교자 6명 중 민윤명(프란치스코) 회장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천주교 청주교구장 장봉훈(가브리엘) 주교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이 방문하셨던 곳, 신학생 후보자를 선발했던 곳, 순교 선조들이 박해 중 신앙을 보존했던 방축골과 계마대 교우촌을 기억하고자 봉암공소를 성지로 선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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