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

 
 

점쟁이와 학자가 공통점이 있다. 현상을 진단 혹은 분석하고, 결과와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두 직업은 닮은꼴을 하고 있다. 물론 전자와 후자는 그들의 직업적 성취에 도달하는 과정은 분명 다르다. 특히 학자들은 이론 혹은 모형을 개발하여 현상의 분석 그리고 이를 통한 예측에 대한 합리성과 타당성을 객관화시키고자 한다.

정책학에서 정책결정과정을 분석하는 모형 중에 사이버네틱스모형이라는 것이 있다. 이 모형에서는 정책결정은 보다 낳은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범위 내에서 현상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고 본다. 불확실성을 극히 싫어하여 통제범위 내에서 정책 환경을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이 기본 가정이다. 만약 일정한 통제범위 밖으로 이탈하는 경우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책결정이 추진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보일러의 작동방식과 정책과정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안의 온도를 24℃로 설정되었고, 현재 온도가 18℃라면 가열을 통해 목표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난방장치는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이후 설정온도를 중심으로 난방장치는 지속적으로 작동과 멈춤을 반복한다. 바로 정책이라는 것이 난방기의 작동과 같이 일정한 기준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작동과 멈춤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정온도에 지속적으로 도달하지 못하거나 이를 초과하여도 작동이 멈추지 않을 경우, 우리는 보일러의 고장으로 진단하고 설정온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부품 혹은 보일러 자체를 교체함으로써 이를 해결한다. 마찬가지고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도 정책이 통제범위를 이탈하는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결정을 추진한다. 만약 정책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담당자의 교체 혹은 조직개편 등과 같은 정책도구의 변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를 정책학에서는 ‘도구적 학습’이라고 한다. 정책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변동은 새로운 정책결정가 혹은 조직을 통해 추진된다. 정책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대안이 도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사이버네틱스 모형은 정부의 많은 현상을 설명하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각종 민원관련 사항과 관련하여 시위 등 집단행동이 발생할 경우, 보다 쉽게 민원인들의 민원이 해결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는 정책당국이 집단민원의 발생을 불확실성의 출현으로 판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또한 정권교체는 물론이고 장관교체 이후 해당 분야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경되는 것은 이들 분야 정책에 대한 도구적 학습이 추구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현 정부 정책의 특징은 설명 불가라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정책실패로 평가되면 장관을 희생양 삼아 교체를 통해 정책변경을 추진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 행태였다. 사이버네틱스모형은 이와 같은 현상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현 정부의 탈원전정책, 부동산정책 등은 정책실패로 평가되었고, 장관교체 이후에도 해당 정책들은 불변이다. 한마디로 설명불가한 정책실패들이다. 탈원전정책의 경우, 당초 허무맹랑한 원전사고 영화에 비롯되었다는 소문도 있듯이 명확한 이유도 없이 이제까지 세계일류의 원전산업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 원전사고와 방사능의 위험은 기우(杞憂)라는 것이 현 정부 초기 신고리원전과 관련한 공론화 과정 등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전력수급의 근본적 변화가 단순히 전기요금의 인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탈원전은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다. 또한 부동산정책을 보면, 현 정부는 부동산을 잡겠다는 공언(公言)에도 불구하고 허언(虛言)이 된지 오래다. 역대 정권 최대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며,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반시장·규제 중심의 정책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이 또한 설명불가는 마찬가지다.

물론 특정 이론을 통해서 현 정부의 정책이 설명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점쟁이와 학자들의 예측이 종종 틀리는 것은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책과정과 다른 행태를 보인다면 이론과 진단 중 어느 것이 틀린 것인지 새롭게 접근해 볼 필요는 있다. 정부부처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정권차원의 문제라면 담당부처 인사 혹은 조직의 변경이 아니라 그 윗선의 교체를 통해서만 정책변경이 가능하지 않을까? 마치 보일러가 문제일 때 온도조절장치를 교체한다고 집안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론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도구적 학습을 잘못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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