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순 수필가(감곡면 오향리)

정성껏 분재를 가꾸는 사람을 보노라면 어쩜 저렇게 곰살궂을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뿐 나도 저런 취미를 갖고싶다. 하고 마음먹어 본적은 없었다.
그랬던 나에게 곰상스러운 감성을 유발시킨 한 생명체가 생겼다.

그 물체와의 만남을 얘기하자면 팔년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야한다. 나를 자기 친정어머니 대하듯 곤경하며 정을 주는 젊은이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느 날 초대를 받아 갔다 돌아서는 내 손에 일회용 컵 하나를 쥐어줬다. 컵 속은 모래 위에 잎사귀 하나가 비스듬히 뉜 채 있었다.

가져가서 잘 길러보라며 기르는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이것이 번창해지면 돈도 생기고 집안이 화평해 진답니다” 하는 속설까지 귀띔 해 주었다.
내가 분재에 문외한인 것을 잘 알고있는 남편은 저 사람의 괜한 짓에 생명체를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마음으로 지켜 보고있는 듯 했다.

나의 열정은 불씨가 되었을까? 그늘 쪽에 컵을 놓아두고 모래 위가 마르면 스프레이로 물을 살살 뿌려주기를 한 달 보름정도 정성을 드렸을 즈음 바쁘게 움직이는 내 시선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는 느낌에 가까이 가보았다.

모체인 이파리 옆에 내 새끼손가락 손톱 만한 떡잎이 붙어있고 그 떡잎 복판에 또 다른 두 장의 잎이 솟아나는 것을 관찰 할 수 있었다. 45일 동안 모태의 아픔을 겪고 한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새 생명을 보는순간 나는 도취경에 빠져 한참을 그옆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고 숭고함 그 자체인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하는 광경이었다.

칠 년 가까운 세월을 성심껏 가꾼 보람 있어 베란다 천장에 맞닿을 듯 나무들은 무성하게 자랐고, 짙은 핑크 색을 뽐내며 활짝 피는 꽃 기린과 주황빛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꽈리나무는 사계절 없이 분재마을을 화려하게 장식 해 주었다. 이런 우리 집 화훼 원을 방문객들은 식물원에 온 듯 하다며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과 식물이 공존하며 아기자기 살아가는 것에 질투의 큐피드가 날아 꽂혔음일까? 그렇게도 싱싱하던 잎새들이 누릇누릇하며 시들해지는 것에 놀라 며칠을 두고 원인을 알아보며 애를 태웠다.

태풍`루사`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그 해는 십 일월 중순에 벌써 한파가 찾아와 돌개바람이 불었다. 이런 기상현상에 여태껏 뿌리부분만 가려줬던 월동준비로는 어림없는 것 같아서 검은 비닐로 나뭇가지 전체를 덮었다. 그러나 전과 같은 생기는 돌아오지 않고 생을 다하려는 듯한 형국에 발을 동동 굴리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부지 갱이 라도 밭에 꽂아두면 싹이 난다는 봄이 오고 초여름이 찾아왔건만 나의 분재마을에는 소생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너희들의 소원이 무엇이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병든 생명체들을 마주하고 서있는 내 등을 따사로운 햇살이 도배 질을 했다. 이 때 ‘영양제를 주입 해봐...?’ 번뜩 내 뇌리를 두드렸다.

링거를 맞은 분재들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반년 동안의 반란을 멈추고 엽록소가 되살아나며 윤기 반지르르한 잎새들이 나를 바라보며 ‘우리들은 영양실조였어요. 그것도 모르면서 분재를 해요!’ 하는 야무진 외침을 듣는 듯 했다.

분재마을의 이번 반란을 겪으면서 오늘날 서산 낙일 같은 우리나라 정국을 떠올려봤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에는 나 몰라라 외면 한 채 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 된 정치인들, 우왕좌왕 삐틀거리는 정부의 정책에 민초들은 제 살길 찾겠다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죽자살자 몸싸움하고 밤새워 촛불시위. 이 소요를 보고만 있을 일일까? 제발 두꺼운 방석 깔고 앉은 양반들이여! 일심전력하여 스산해진 민심에 알맞은 링거를 꽂아서 내 분재마을과 같이 소생하는 나라로 이끌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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