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강동대 사회복지과 교수,행정박사

 
 

지난 5월 윤석렬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를 지목하고 합리주의와 지성 주의로 회귀하여야 함을 밝혔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지도자다운 품격 있는 말이다.

오늘날과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국가와 문명의 출발은 합리와 이성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서 출발하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재발견과 함께 시작된 르네상스의 시대를 거쳐, 인류는 종교개혁을 통해 소수의 성직자에 의한 사상적 독점구조를 붕괴시켰다. 신의 지배가 사라진 서구에서 ‘왕권신수설’이라는 괴상망측한 절대 지배체제가 잠시 기승을 부렸으나, 이내 계몽주의(啓蒙主義)에 따라 타파되었다. 근대 이후 국가성립에 대한 핵심적 정치사상 중의 하나는 ‘사회계약론’이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던 인류가 안정과 자유를 위해 본인들이 가진 천부 인권을 일부 양보하여 국가를 만들었다는 사상은 이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발전과정에서 자연과학의 학문적 성취는 힘입은 봐 크다. 자연과학의 인과적 결론의 도출과 그에 따른 물질문명의 발전은 사상사에 있어 합리주의 혹은 이성주의에 자극하였다.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는 인과관계의 추구, 절대 진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류 문명의 전진으로서 발전 등에 대한 강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자연과학에서의 이성주의는 인류의 물질문명에 있어서 커다란 진전을 이룩하였다. 오늘날 이룩된 현대문명은 바로 이성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결과물이다. 사회과학에서 이들 사상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낳았다. 자본주의는 인류의 번영을 이끌어왔고, 민주주의는 인류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복지를 낳았다.

그러나 인류발전에 있어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탐욕과 그릇된 사상적 흐름은 인류를 커다란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신대륙 이후 대양시대의 노예무역 그리고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지배와 양 차 대전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재앙을 가져 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어 등장한 사회주의는 반지성 혹은 반합리의 전형적 정치체제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명칭과 달리 동구권(東歐圈)몰락이후 확인된 것은 비과학적 일당 독재가 얼마나 현상을 왜곡시키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1990년대 이후 기승을 부렸던 포스트모더니즘 등 포스트 주위는 반지성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들은 처음부터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인류 문명의 발전을 거부하였다. 상대주의(相對主義) 혹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하였다. 여성과 성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가족을 해체하려 하였다.

2000년 초반 발간된 [지적사기]라는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을 철저히 밝히고 있다. 한 학자가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종하는 논문을 그들의 주류 학술지에 기고하였다. 그 글은 자연과학적 학문적 용어들을 교묘하게 섞어 만든 엉터리 논문이었는데, 이들 추종 학자들은 그 글의 진위도 확인하지 못하였다. 발간 직전 기고한 학자는 자신의 논문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허구를 밝히기 위해 쓴 가짜 논문임을 자백하며 이들 사상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후에도 많은 반지성·반합리주의가 세상을 어지럽혔다.

민주화 이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반지성·반합리주의가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 대표적 사건이 두 차례의 촛불 난동이다. 광우병이라는 사라져간 질병의 위험성을 확대·과장하여 한동안 정부를 마비시켰다. 순진한 국민들은 언론의 보도를 믿고 민주주의의 함성으로서 촛불시위에 참여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반지성주의에 놀아난 꼴이 되었다. 아마 이것이 우리 사회에 반지성주의 침투의 심각성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반지성의 결정타는 탄핵사태를 불러왔던 2차 촛불 난동일 것이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보다 못한 가짜뉴스의 끝을 보인 사건이 탄핵 사건이 아닐까 한다. 탄핵의 근거가 되었던 뇌물사건은 1심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헌정질서의 심각한 중단을 불러왔다는 측면에서 반지성의 완결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임 대통령이 이성과 합리를 존중하는 시대로 돌아갈 것을 천명하였다. 비정상화의 정상화가 진행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지성 주의 선봉장이 반지성의 결정판이었던 탄핵사태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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