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요식 차장<취재부>

17대 총선은 여당의 원내 과반의석 확보와 동서분할 구도 극복 실패라는 결과로 끝났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 속에서도 우리 사회는 흔들림 없이 총선을 안정적으로 치러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인 것 같다.

총선 이후 극단적인 사생결단식의 정치가 협력과 상생의 정치로 전환될 것으로 믿지만 상당히 우려되는 조짐도 함께 보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총선으로 갈려진 국민들의 마음이 안정을 취하기도 전에 탄핵과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한 대규모 찬반집회가 진보·보수단체들에 의해 다시 재개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든 탄핵 결정을 내리든 또한 파병문제가 어떻게 결정되든 그 동안 찬반 논란을 벌이며 대립해왔던 세력간 화해가 가장 큰 숙제로 남게 되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려보면 동북아 경제는 중국 경제의 고성장과 일본 경제의 회복세에 힘입어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목전에 두고 해묵은 보혁투쟁과 기득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물론 자연의 섭리처럼 역사에도 섭리가 있어서 몇 사람이 애를 쓰고 바동댄다고 역사의 큰 흐름이 금방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이라크 파병이나 북핵문제, 보안법 개폐문제, 송두율 교수 사건 등에서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등에서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힘이 부족한 것도 분명하다.

지금 와서 ‘국론통일’이라는 권위시대의 용어를 떠올리자는 것은 아니다. 다원주의 민주사회에서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충동하고, 사람들의 견해가 다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는 합의하거나 하나로 통일될 수는 없지만 각기 서로 다른 실체로 남아 있으면서 경합하는 관계, 즉 상대를 소멸시켜야 하는 ‘적’으로 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보는 관용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는 상대방 사상에는 반대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의 사상을 방어할 수 있는 권리는 의문시하지 않는 입장이다.
정작 우리사회의 문제는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대화와 경쟁, 그리고 공존의 원칙을 너무나 쉽게 부정하는 데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미명아래 이런 민주적 규칙을 내팽개치는 역설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인내심을 갖고 민주주의적 절차를 차분히 지키는 데서 뿌리내린다. 견해를 달리해 대립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에서 자신의 입장을 무조건 옳다고 강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총선과 탄핵정국을 계기로 자해하거나 폭력을 구사하는 것은 정치와 역사의 입체성과 복합성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본 결과일 뿐이다.

공공선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진보·보수 모두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개혁과 화해·협력의 민주주의를 일궈내야 한다.

우리사회의 찢겨진 부분은 결코 억지로 봉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침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남은 길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것은 냉정함과 책임윤리에 대한 투명한 이해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인내하고 인내할 때다. 여야는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을 위해 앞장설 각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들도 이제는 생업에 돌아가 맡은 바 업무에 매진할 때이다. 모두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킬 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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