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종렬 교장(음성 청룡초등학교)

어느 낯선 다실에서 그리움에 지친 목마른 입술을 커피 한잔으로 달래며 방황하는 겨울 나그네.
그리움만 먹고 살자. 그러나 절대 슬퍼하지는 말자. 어차피 神이 존재하지않아 罪만 살고 善은 더욱 시들어 가면서 역류 逆流하는 세상이 아닌가?어머님!

결코 사랑을 연습하다 젖은 눈을 하고 고독의 좌절감에 허덕이는 못난 사내는 절대 아니오.
나 하날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시던 당신께서 산으로 가시던 날, 유난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지 않았소.
새 하얀 눈을 밟으며 얼마나 오열하였는지 모르오.

세차게 쏟아지는 새 하얀 눈꽃송이는 당신의 따사한 손길이요. 오동잎 사이로 흐느끼는 매운 바람소리는 당신께서 날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가 아니겠소.
무섭도록 적막이 엄습해 오는 시골의 밤, 백열등이 쏟아지는 허허로운 방안에서 얼마나 목 메여 소리쳤는지 아시겠소.

모든 것은 세월이 해결해 줄 거라는 뭇사람들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애틋한 그리움을 어찌하란 말이요.
망각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소. 아마 이건 하느님께서 내게 내린 가혹한 형벌인가 보오.
어버이날, 무심코 지나쳤던 카네이션 한송이가 왜 그리 내 가슴을 저미는지 모르겠소.

올해도 어버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후회한다고 훈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설움에 복받쳐 눈물이 핑 돌았소.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소. 목이 빠져라 퇴근시간을 기다렸소.

백리길 구비 돌아 당신의 무덤으로 달려가 목이 터져라 당신을 부르며 통곡하고 싶었기 때문이요.
결코 너만은 땅 두더지가 되어선 안 된다며 아픈 몸도 마다 않고 평생 땅을 파시던 당신.
고단한 몸 잠시도 쉬지 않고 밤새도록 靜閑水에 심지 불 겨고 나를 위해 빌고 빌던 당신의 까칠한 손을 돌아가신지 30년이 다된 지금도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박복하신 당신!
평생을 고생만 하시던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바위처럼 굳세게, 억새풀처럼 억세게 살아 선생님도 되고 교장도 되었건만 당신은 조금도 기다려주지 않고 이 불효자식에게 깊은 한을 남겨 주셨습니다.
당신 생각으로 손에 일이 안 잡혀 온종일 교내를 배회하다 교장실로 들어와 보니 내 책상위에 카네이션이 수 놓여진 편지 한통이 있지 뭡니까.

설렘에 얼른 뜯어봤소.
벌써 여대생이 된 착한 숙이의 편지였소.
“너무 슬퍼하실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해 펜을 들었답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오늘이 가장 슬픈 날이라고 하셨죠. 선생님! 저는 절대 울지 않겠어요. 어머님의 혼령이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테니까요. 옛날처럼 명랑하신 선생님이 되어 주셔요.”6학년 때 엄마를 잃고 애통해 하던 숙이의 눈물 먹은 얼굴이 오래 떠올랐소.

“그래 숙아, 미안하다. 이제 절대 슬퍼하지 않는다. 착한 너희들이 보고 있는 한……”오랜만에 착한 숙이에게 긴 푸념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소.
노을진 교정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소.

어머님!
이젠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으렵니다.
당신이란 이름은 언제나 나를 비춰주는 태양이요.
나를 지켜주는 성이요.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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