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문 음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 꿈드림 센터장

 

봄꽃이 화사하다. 삼월부터 예년에 비해 날씨가 덥더니, 개나리,진달래,벛꽃 등 일찍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공원가나 하천변에 피어난 벛꽃이 바람에 날리어 한잎 두잎 공중으로 흩어져 군무를 이루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꽃처럼 모두가 화사한 봉우리를 피운다. 시인들도 유독 꽃에 대한 주제가 많은 편이다. 그중 하나를 끄집어 내본다. “누구나 한때는 꽃이었다. /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에 / 눈물난다. / 누구나 한때는 꽃이었다. / 시든다고 탓하지 마라. / 떨어진다고 슬퍼마라. / 오늘의 꽃은 어제의 꽃이 아니다. / 바람은 흔적을 지우지만 / 눈보라와 비바람 속에서도 / 꽃은 다시 핀다.”

요즈음 청소년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이 덕담처럼 오고간다. 실제로 청소년들 본인의 소망도 꽃길을 선호한다. 어쩌면 꽃길이 비바람과 눈보라와 같은 고통을 감내하는 인고의 한때임을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숙명론적인 경쟁교육이고, 사회에 진출한다 해도 또다시 과도한 경쟁의 연속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경쟁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경쟁이 협동의 원리를 과도하게 압도하게 되면 사람들이 삶이 피폐해지게 마련이다. 경쟁도 협동의 테두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경쟁의 속성은 야만성을 답보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한 편견 속에서 자신이 함몰될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긴 자도 언제가 자신의 자리를 또 다른 경쟁자에게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협업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며 삶의 궤적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것이 있다면 식물과 곤충일 것이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날아다니며 촉매역할을 해줌으로써 벌은 꿀을 취하고, 꽃은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을수 있게 된다. 상생은 아름답고 피폐하지 않으며 ‘덕분에’라는 감사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자신의 기대치에 어긋나거나 빗겨가면 때문에로 자신의 방어기재를 작동한다. 경쟁에서 낙오하게 되면 상대를 탓하는 등 외부적인 원인 속에서 원인과 핑계를 찾는다. 심지어 자신에게도 자기착취와 혐오를 한다. 오늘날 공황장애와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조금은 느리게 걸어가며 기다림의 미학을 즐길 줄 아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가치에만 치중된 것을 사회적 가치와 관계적 가치 등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어쩌면 이 시대에 디오게네스의 개 같은 삶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관습,전통,제도,도덕,윤리.법률 등을 부정하며 인간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려는 태도를 견지한 철학자가 바로 디오게네스다. 누가 봐도 디오게네스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둥근 나무통 속에 들어가 굴리고 다니는가 하면, 대낮에 등불을 켜고 다니며 사람을 찾는다고 외치고, 햇살을 쬐며 뒹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찾아와 도와줄 일이 없겠냐고 정중하게 물었을 때도 그는 햇살을 가리고 있으니까 조금만 비켜서라고 했다. 함께 온 사람들이 디오게네스를 비웃었지만 왕은 디오게네스를 부러워했다. 디오게네스는 자족하는데 그친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 다시 말해 무치(無恥)의 삶을 지향했다. 디오게네스가 살던 철학적 삶이 이 시대에 걸맞지 않겠지만, 자신의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욕구에서 벗어날 필요가 요구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하천 둑을 디오게네스와 함께 걸어보는 것도 봄의 향연을 더욱 무르익게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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