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계획대로 잘 산 것일까. 작년 이맘때도 분명 이렇게 자신에게 물었다. 매번 내년에는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계획도 세웠다. 언제부터인가 거창한 계획보다는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소소한 일들로 채우지만 그것도 실상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이 왜 이리도 빠른지 모르겠다고 한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반증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일 년이라는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연령대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어릴 때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해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한해를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만남과 이별의 아픔도 겪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계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학 때면 숙제로 내 주었던 계획표 짜기가 어쩌면 우리의 삶을 계획하게 만들어 준 연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표 안에는 잠자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친구들과 노는 시간까지 써 넣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참으로 균형에 맞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계획표를 만드는 연습을 수없이 했음에도 어른이 되면 우리는 그 기억들을 까마득히 잊고 일에 빠져 살게 된다. 성인들의 하루 일과표를 보면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이십대부터 삼십대 때는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들을 급급하게 해결하기 바빴던 날이 많았다.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하루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어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숨을 찰 지경이다. 이십대 초반에 결혼한 우리 부부는 함께 일을 했다. 남편이 가축인공수정사인 까닭에 사무실을 얻어 소 수정 외에도 가축사료를 팔았다. 물론 신혼 때는 가축수정 일만 했기에 집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세 아이를 기르고 보살폈다. 하지만 그때도 무선전화기가 나오기 전이라 화장실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30년 전만 해도 시골에는 집집마다 소가 없는 집이 드물었기에 일이 정말 많았다. 새벽 네 시만 되면 소 인공 수정을 의뢰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렇게 바쁜 하루였으니 한해의 계획을 세우는 일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사십대 이후부터는 그래도 한해의 계획표를 짰던 듯하다. 그때는 논술지도 일을 하면서도 청주와 충주로 밤늦게 까지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러 돌아다녔다. 40대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때는 없었다. 그것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계획표 안에는 오로지 일과 공부가 대부분이었고 휴식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산 덕분인지 50대에는 대학교를 비롯한 강의를 하는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함께 온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 마음이 불안했다. 급기야 강의를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도 없는 때가 잦아 졌다. 모든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강의도 집안일도. 오로지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롯이 나를 만나기 위해 서해안으로 피접을 갔다.

나무는 휴식을 위해 해거리를 한다고 한다. 한 해 동안 그 많은 열매를 열리게 하느라 온 힘을 소진 하였으니 한해는 쉬면서 재충전을 하는 것이다. 또 일만 하는 줄 아는 일개미도 쉬는 개미가 있어야 그 집단이 영속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쉬는 것이 곧 살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무와 작은 곤충들도 아는 일을 어찌 사람만이 모르는 것일까.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최선인줄 알았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 계획표에 누구나 친구들과 놀기라는 시간을 꼭 넣었다. 그런데 그리 중요한 사실을 어른의 시간표에서는 헛된 시간이 되어 빼버리는 실수를 하고 만다.

요즘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내가 짜는 일 년 계획표에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꼭 들어간다. 그리고 일 년을 마무리 하면서 내년에 대한 다짐도 잊지 않는다.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 외에는 적당히 열심히 하기

앞으로 일 년, 멀지만 짧은 시간. 그 시간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만들어 지는 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빌어 본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