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종렬 교장(음성 대소초등학교)

‘스승은 운명이다.’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한 인간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말인 것 같다.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훌륭한 스승 한 분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각박한 세태에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교단이란 밭을 갈며 살아 온지 어언 35년. 얄팍한 지식 하나만 갖고 살아온 내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제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저질렀는지를 회고하면 자다가도 식은땀이 흐른다.
초임시절 고향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벌써 30년은 족히 넘었나 보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S군은 가정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골장터의 이발소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로 사회의 첫 출발을 하였다.
나는 S군이 일하는 이발소에 단골로 다니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하여 조금도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며 격려를 아기지 않았다. 다행히 S군은 눈썰미가 있어 이듬해부터는 손님들의 면도는 물론 이발도 직접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S군이 나의 머리를 깎으며 “선생님, 아무래도 이발기술은 비전이 없는 것 같아 서울에 가서 미용기술을 배우려고 하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라고 진지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 고루하고 융통성이 없는 나는 속으로 사내자식이 오죽 못났으면 평생 여자 손님들 머리나 만지며 살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에 “쓸데없이 허황된 생각일랑 말고 어서 빨리 이용사 자격증도 따고 이발소도 차려 어머니께 효도하며 살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로도 S군은 내 머리를 깎을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울에 가서 미용기술을 배우는 것이 훨씬 비전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으나 나의 대답은 오직 한결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발소에 들렸더니 S군이 보이질 않았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미용기술을 배운다고 서울로 갔다며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라며 참으로 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친구라며 혀를 끌끌 찼다.

S군이 떠난지 한 달쯤 되어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주소는 서울 명동의 어느 미용실이었고, 선생님 말씀을 어겨서 죄송하다며 꼭 성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월은 흘러 교육근속 30주년을 맞아 초임시절 제자들이 ‘은사의 밤‘을 마련했다고 하여 참석하니 많은 제자들이 나를 반겨주었고, S군도 나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와 인사하였다.

이내 행사가 시작되고 사회자가 S군을 소개하는 순간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소개에 의하면 S군은 현재 서울 명동에서 30여명의 미용사를 거느린 유명한 헤어 숍을 경영하고, 전문대학 겸임교수로 출강하며 기능올림픽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역경을 딛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려는 제자에게 환한 등불은 되지 못할망정 오히려 제자의 앞길을 가로막은 내가 어찌 스승이라고 감히 나설 수 있겠는가.

만약 이 못난 스승의 말을 믿고 그냥 시골에 눌러 앉았다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못난 이 스승의 허물을 조금도 원망치 않고 수시로 안부를 물어오니 그저 한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훌륭한 교육자란 많은 지식을 자진 자가 아니고, 가르치기만 잘하는 교사도 아니며, 먼 훗날 삶의 어려운 고비 고비에서 불현듯 생각나는 선생님이 참 스승이다.”라던 하버드대학의 베로히 교수의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며 교단을 떠나는 순간까지 참스승의 길을 걸으리라 다짐해 본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