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화의 식물 칼럼 6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는 호랑가시나무 

 

 

정충화(시인, 식물해설가)
정충화(시인, 식물해설가)

지인들과 신년 인사 나누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연말인데 사회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우리 삶 주변을 휘감고 있는 듯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새해를 앞둔 설렘이 교차하고 성탄절까지 겹쳐 약간은 들뜬 분위기여야 할 텐데 말이다.

예전엔 십이월에 들면 송년 분위기로 거리가 시끌벅적했었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캐럴, 구세군 자선냄비와 종소리, 명멸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으로 연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곤 했다. 그런데 각박해진 세태 탓인지 요즘은 아예 그런 분위기가 사라져 버렸다. 그만큼 살기가 팍팍해졌다는 것 아니겠는가.

중학교 때, 몇 달간 친구 따라 교회에 다닌 적이 있어 연말만 되면 가끔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문방구에서 재료를 사다가 친구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던 일, 교회에서 또래들과 트리를 장식하던 일 등이 그것이다.

기성품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고 따라 그려 넣던 소재와 트리를 장식하던 소재에 호랑가시나무 잎과 열매 그림이 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물론 그게 호랑가시나무였음을 알게 된 건 본격적으로 식물 공부를 시작한 뒤 일이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카드나 트리에 호랑가시나무 잎과 열매를 장식하는 건 서양인들이 부여한 상징성 때문일 게다. 뾰족한 호랑가시나무 잎은 예수가 머리에 쓴 가시 면류관을, 붉은 열매는 예수의 피를, 한겨울에도 푸른 호랑가시나무 잎에는 영생과 부활의 의미를 씌운 데서 크리스마스와 연관 지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 호랑가시나무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감탕나무과의 늘푸른 넓은잎 작은키나무인 호랑가시나무는 추위에 약해 전라남북도 해안 지방과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난대수종이다. 높이는 2~3m 정도로 전체적으로 둥근 나무 형태를 이룬다.

호랑가시나무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단연 잎이다. 두껍고 광택이 나는 잎은 타원꼴 육각 모양으로 끝에 가시가 달리는 게 큰 특징이다. 그런데 이 가시는 왜 생기는 걸까? 이는 포식동물로부터 뜯어먹히지 않으려는 식물의 생존전략이다. 따라서 동물이 접근하기 쉬운 어린나무일수록 대체로 가시를 더 크게 더 강하게 만든다.

반면, 동물의 접근이 어려워지면 가시는 대개 퇴화한다. 이 같은 예는 높이와 흉고직경이 커진 음나무, 가시오갈피, 아까시나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잎도 짐승의 접근이 어려운 높이의 것은 가시가 거의 사라지고 잎끝에 하나만 남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호랑가시나무를 돋보이게 하는 건 가을과 겨울 사이에 붉게 익는 열매다. 지름 1cm가 채 안 되는 이 열매는 그 자체로 관상 가치가 뛰어나며 양식이 부족한 겨울철 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된다.

호랑가시나무의 녹백색 꽃은 4~5월경 잎겨드랑이에 우산모양꽃차례로 5~6개씩 달리며 은은한 향기가 난다. 이름자의 호랑가시는 잎끝마다 달리는 날카로운 가시가 마치 호랑이 발톱 같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호랑가시나무 잎을 늙은 호랑이 발톱 같다 하여 노호자(老虎刺)로 불렀다고 한다.

이제 며칠 뒤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게 된다. 하지만,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데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어지럽고 암울해 솔직히 별다른 기대감이 생기질 않는다. 다만, 부활의 의미를 품고 있다는 호랑가시나무 잎처럼 새날에는 우리네 삶에도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라도 되살아나길 기원해 본다.

                                                                                                  정충화(시인, 식물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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