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화 시인, 식물해설가

겨울철 산길을 오르다 보면 능선부의 높다란 나뭇가지에 커다란 까치집 같은 물체가 군데군데 달린 모습을 가끔 마주치곤 한다. 눈 덮인 산과 새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바람에 흔들리는 둥근 식물체의 모습은 자못 신비로워 보인다. 게다가 햇볕에 비친 연한 노란색 열매는 보석처럼 반짝이며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살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종사하거나 어디에 기거하여 사는 생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더부살이, 셋방살이, 타향살이, 종살이 같은 용례에서 보듯 얹혀살거나 처지가 몹시 궁색함을 표현할 때 한탄조로 쓰이곤 한다. 그중 더부살이, 셋방살이 같은 신산한 삶은 식물 세계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한 예는 기생식물에서 확인된다. 말 그대로 다른 식물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식물은 혼자 힘으로는 살지 못하며 대개 의존하는 식물에 해를 끼친다. 전적으로 기생하는 식물 중 하나인 실새삼 같은 종은 아예 기주식물을 말라죽게 만든다. 반면, 기주식물에 피해를 주긴 하나 스스로 약간의 광합성을 하는 반기생식물도 있다.

글머리에 등장한 나무에 걸린 커다란 공 모양 식물체는 겨우살이과에 속한 늘푸른 넓은잎 작은키나무인 겨우살이다. 내장산, 덕유산, 속리산 등 전국의 약간 높은 산에 드물게 분포한다. 엄연히 나무로 분류되었으나 스스로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기주식물에 뿌리를 박고 수분과 필수 영양소를 훔쳐먹으며 살아가는 반기생식물이다.

겨우살이가 주로 의탁하는 나무는 참나무 종류이거나 팽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 자작나무 등이다. 봄여름엔 나뭇잎에 가려 살지만, 겨울이면 왕성하게 생육한다. 지름 1m가량 둥근 형태를 이루며 껍질은 황록색이고 가지는 Y자 모양으로 갈라진다. 두껍고 짙은 녹색을 띤 피침 모양 잎은 가을과 겨울철엔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도 한다.

4월경 가지 끝에서 종 모양 꽃덮이가 네 갈래로 갈라진 노란색 꽃이 핀다. 지름 6mm가량의 물열매는 가을에 연한 노란색으로 익고 겨울에도 매달려 있어 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되며 이를 통해 번식한다. 점성이 강한 열매를 새들이 먹고 다른 나무에 앉아 배설할 때 묻어나오는 종자가 가지에 달라붙어 새로운 개체로 태어나는 것이다.

겨우살이라는 나무 이름은 숙주식물에 빌붙어 겨우겨우 살아간다고 하여, 또는 겨울에도 푸르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겨우살이는 겨우사리’, 겨울에도 푸르다고 동청(冬靑)’, 기생하는 나무라 하여 기생목(寄生木)’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 중 동청(冬靑)’에서 지금의 이름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한방에서는 참나무류 나뭇가지에서 채취한 겨우살이를 '곡기생(槲寄生)', 뽕나무 가지에서 채취한 겨우살이를 상기생(桑寄生)이라 부르며 약용하고 있다.

겨우살이 추출액은 백혈병 혈액 세포의 증식 억제 효과가 있으며 혈압과 심장박동수를 내리고 항암 효과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불법 채취가 횡행하는데 절대로 허가 없이 채취해서는 안 된다.

기생식물 같은 존재는 인간 세계에서도 더러 볼 수 있다. 사특한 방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갈취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해 먹는 얌체 같은 사람 말이다.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상대방을 등쳐 먹으려는 악질적인 족속이 갈수록 늘어나는 듯해 개탄스럽다. 새삼 나는 살면서 부지불식간에 주변인의 삶을 흔든 적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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