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인간을 만든다

인간의 일생은 따지고 보면 결코 삶의 반추(反芻)다. 길게 보면 인류가 살아왔던 (역사)
삶에 대한 반추요, 짧게 보면 어제의 삶을 오늘에 반추하고 있을 뿐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보다 구체적인 자신에 대한 삶을 관조(觀照)하고 향기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게 하려면 문학 작품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학 작품은 지극히도 우리 인간과 밀착된 삶의 일부, 혹은 전부로서 진실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곧 인간을 만든다>는 말과 일맥상동한다.
물질이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생활의 수단이나 방법, 또는 편리한 도구로서 보조물의
역할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신적 황폐나 고갈 상태까지는 해결해 줄 수 없다.
문명의 이기와 물질의 풍요는 오리혀 정신적 빈곤이나 정서적 불안을 과중 시킬 뿐이다.
부족함 없는 물질로 주변을 가득히 채워놓고 산다 할지라도 마음의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수가 많다.
그 허전함은 곧 정신의 황폐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질이 정신을 초월할 수가
없고 물질만의 소유가 행복의 전부가 되지 않음에 있다 할 것이다.
뭔가 모를 허전함이 마음의 한켠에 자리할 때 햇빛 드는 창가에 화초 한그루를 심어
가꾸거나, 응접실 벽의 여백에다 그림 한 폭, 족자 한점 쯤 걸어두고 감상하며 사는 것도
모두가 정신적 위안과 삶에 대한 향기를 아쉬워 한데 있듯, 사람마다 각자가 지닌 마음의
여백(餘白)에다 문학작품 한 편이라도 읽어 청신한 문화의 씨를 뿌리고 가꾸어 갈 때
스스로의 만족함과 위안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정신적 지주가 되고 삶을 살찌우며 인간의 존재가치를 일깨우고 가르쳐
주는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흔히 문학 작품을 <살아있는 인간>이라고들 한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살아있는
인간>을 새창조하기 위하여 피를 말려 가며 밤을 밝히면서까지 고단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일상에서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을 잊고 살 듯, 아니면 공기가 없으면
잠시도 숨을 쉴 수가 없음에도 공기의 귀중함을 모르고 산 듯, 물질만 알고 정신의
황량함을 망각한채 살아가기 일쑤다.
인간 모두가 아무리 허덕이며 사는 세상살이 일지라도 때로는 오솔길을 거닐며 풀꽃의
향기를 맡기도 하고 졸졸거리는 개울물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할 것이며, 하다못해 풀잎에
반짝이는 아침 이슬의 영봉함이나, 흐르는 구름, 가물거리는 별빛, 스러저 가는 조각달
같은,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더불어 문학 작품의 감상과 이해는 인간에게
안식과 위안과 사색과 삶의 이야기가 담겨지게 마련이요, 거기에는 진솔한 삶과 행복이
함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혹은 이미 읽은 문학 작품에서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내용이 못된,
비록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작품)일지라도 그것을 보고 느끼는 측면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또한 많고도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곧 인간이다> 는 말이 성립 될 수 있다. 문학의 이해는 곧 인간의
이해이며 문학은 곧 일상의 삶 자체라고 여겨도 될 일이다.
낙엽 지는 이 가을에 풀벌레 소리 들으며 좋은 작품 많이 읽어 삶의 질을 높이는데
게으름이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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