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는 가르칠 만하다는 것으로, 열심히 공부하려는 아이를 칭찬하는 말이다.

유자가교(孺子可敎)는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개국한 책사(策士) 장량(張良)에 얽힌 고사이다.
장량은 본래 회양(淮陽) 지방에서 예제(禮制)를 배우다가 조국(祖國)인 한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가산(家産)을 정리하고 회양에서 힘을 쓰는 장사(壯士) 한 사람을 사서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라고 시켰다. 때마침 진시황제가 박랑사(博浪沙)를 순시(巡視)하러 왔다. 장사는 120근이나 되는 철퇴(鐵槌)로 시황제를 공격하려다가 호위병(護衛兵)을 치고는 붙들려 결국 장량의 지시(指示)를 받았다고 자백(自白)하였다. 그러자 전국에 수배령(手配令)이 내려졌고, 장량은 이름을 바꾸고 하비(下丕)로 가서 기회(機會)를 엿보기로 했다.

어느 날 장량이 하비교로 산보(散步)를 갔는데, 한 노인이 장량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더니 일부러 신발 한 짝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서 주워 달라고 했다. 장량은 내심(內心)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범상(凡常)치 않은 노인임을 알고는 신발을 주워다가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장량에게 발을 내밀어 신발을 신기라고 하였다. 장량은 무릎을 꿇고는 신을 신겨 주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빙그레 웃더니 말없이 가버렸다.

장량은 다리 위에서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 노인이 다시 돌아와서 장량에게‘유자가교(孺子可敎)’라는 말을 하고는 닷새 후 아침에 다리 위에서 자신(自身)을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장량은 갑작스런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후 장량이 날이 밝자마자 다리 위로 나가니 노인은 벌써 나와 기다리면서 몹시 화를 냈다. 그리고는 내일 다시 나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그 다음날 장량은 새벽에 다리로 나왔다. 그러나 노인이 먼저 나와 기다렸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장량보다 먼저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장량에게 약속(約束)한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며 욕을 하곤 그에게 닷새 후에 다시 나오라고 했다. 장량은 노인이 말한 날 캄캄한 새벽에 다리 위로 갔는데 노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가 한참 동안 기다리자 노인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기뻐하며 장량에게 책 한 권을 주고는 10년 후에 제북(齊北)의 곡성산(穀城山) 아래로 와서 그를 찾으라고 하였다. 그 책은 강태공(姜太公)의 병법(兵法)이었으며 노인은 바로 황석공(黃石公)이었다. 그 후 장량은 그 책을 공부하여 유방(劉邦)의 모사(謀士)가 되었고, 결국 한(漢)나라를 개국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한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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