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흠

 한적한 일요일 오후 둘째 녀석이 말을 건넨다. 아빠!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으면 안 될까요? 글쎄 뭐! 그런데 어디가 좋은데? 아이는 한참 생각중이다. 아마 십중팔구는 중국집 아니면 삼겹살 집 일거다.
우리 나이쯤이면 새카만 꽁보리밥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여름 이 맘때면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보리 밥 안먹는 집이 없었다.
 보리밥은 영양이나 맛에서도 윤기도는 쌀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름 내내 보리밥만 먹다보니 다들 보리밥에 질렸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도시락도 못 싸가지고 오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그런 아이들은 극빈층이라고 해서 점심시간에는 따로 불러 모아서 옥수수죽을 꽁짜로 먹여줬다. 색이 노할고 냄새도 구수해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가끔 옥수수죽을 먹는 아이들에게 사정?을 해서 싸가지고 간 도시락과 바꾸어 먹곤 했다.
 보리밥 혼식 장려정책으로 있는 집 애들도 보리밥을 먹었다.
 간혹 잘사는 집 아이들은 도시락 겉 위에만 보리밥을 살짝 얹어 싸주는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 시골에서는 부잣집이나 가난한집이나 보리밥 먹는 건 똑 같았다.
 한 끼 굶느냐 아니면 죽이라도 먹느냐 기아의 선상에서 깡 보리밥 만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만 있다면 사실 행복이었다. 음력 4,5월이 보릿고개인데 보리쌀이 나와야 보릿고개를 넘었다. 타작 해서 방앗간에서 보리를 쪄 햇 보리밥을 먹고 나면 춘궁기에 못 먹어 얼굴이 누렇게 뜬 아이들이 보리밥 살이 올라 찌든 얼굴들이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지금은 집에서 가끔씩 다이어트 한다고 보리밥을 별식으로 해 먹거나 일부러 꽁보리밥집에 가서 외식을 한다.
 여행지마다 꽁보리밥집이 즐비하고 내가 사는 동네 인근에도 꽁보리밥집이 있는걸 보면 보리밥이 인기가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나는 지금도 보리밥을 좋아한다. 소화가 잘 되고 밥이 부드러워서 대강 우물거려도 목으로 술술 잘 넘어가기 때문에 좋고 보리밥 특유의 구수한 냄새를 좋아한다.
 보리밥이야말로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뒤돌아서 방귀 한번 뀌고 나면 배가 푹 꺼지니 뱃속에 남고 뭐고 할거 없이 장이 잘 비워져 좋으니 이보다 더 좋은 다이어트 식품이 또 있을까? 건강식이 따로 없다.
잠자코 있다가 내가 말했다.
 “우리 보리밥 먹으러가자.”
 둘째 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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