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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농촌박재분 풋내들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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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5.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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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농촌
옛날에 한 도승이 있었다. 하루는 어느 들길을 가는데 황금빛 곡식들이 들판 가득 넘치고 있었다. 그 풍요로움에 이끌린 도승은 자신도 모르게 조이삭을 어루만지며 감탄을 했다. 그리고 다시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를 때 그의 손바닥에는 낟알 세 개가 떨어져 있었다.
도승은 크게 탄식했다. 아 농부들이 애써지은 곡식을 내가 축내고 말았구나. 그리하여 소로 변신한 도승은 삼년 동안 농부의 집에서 일을 하며 떨어진 낟알의 손실을 노역으로 갚았다.
이 이야기는 농부들이 애써 지은 곡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신성한가를 말해주는 것같아 큰 감동을 준다.
올해도 들판은 온통 푸르게만 변해가고 있다. 고추심기는 이미 끝났고, 요즘은 한창 모내기 철이다.
모내기가 끝나면 과수원 열매 솎기가 시작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분주하고 아름다운 들판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 쪽은 어둡고 불안 하다.
저 곡식들이 과연 농부들에게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을 안겨줄 것인가. 대단한 면역성을 가지고 끝없이 출몰하는 병충해, 예측을 불허히는 치솟는 영농비에 반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농산물 가격, 거기다 도둑까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고 보면.
지난해 우리는 인삼을 도적 맞았다. 4년동안 온갖 노력과 정성을 들여 투자하고 가꾸어 이제 막 수확을 보려는데 불청객이 먼저 실례를 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밭에서는 무와 배추, 심지어는 밭에 조가려 놓은 콩섶까지도 몽땅 도둑의 손을 타고 말았다.
분노와 허탈감을 넘어 이제는 모든 농산물들이 도적의 대상물이 되고 있으니 농사도 마음 놓고 지을 수 없는 불안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곳이 어디 이곳 뿐인가. 신문의 사회면이나 TV뉴스, 들려오는 소식마다 강·절도범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도둑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전에는 주로 생존을 위한 부득이한 경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남의 곡식이나 재물을 탐내는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유흥비나 한꺼번에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한탕주의자들이 더 설치고 있으니 안타깝다.
가난한 집에 밥을 훔치러 갔다가 솥이 텅텅 빈 것을 보고 오히려 다른 곳에서 훔쳐온 쌀을 두고 왔다는 도둑의 이야기나 도승 같은 이야기는 그나마 아름다운 전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양심이 남아 있는 도둑은 그만 두고라도 인명살상이나 가정파괴범이 아닌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특별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는 농부들의 곡식마저 분탕질 해서야 쓰겠는가.
삽자루나 괭이를 들고 마음껏 풍년을 구가해야 할 농부들이 총이나 몽둥이를 불끈 쥐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도둑을 지켜야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살벌한가.
농촌은 이 세상 끝까지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채로 지켜져야 할 최후의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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