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태 전 소이면농민회장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빚이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못다 핀 꿈과 희망의 어린육신들을 하얀 국화꽃으로 노란리본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어른들의 욕망과 자본에 비정함과 잘못된 법 제정을 용서해 달라고 하염없이 넋풀이를 해댄들 꽃이 되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올 수 있는가.

어떠한 사죄와 빔도 용서의 구함도 생명의 고귀함 앞에는 견줄것이 없기에 살아있는 자들의 넔두리 또한 부질없는 것 같아 또다시 가슴 한켠이 먹먹해 온다.

날이새면 세월호 사건으로 도배를 해대던 신문들도 앵무새 같이 같은 소리를 반복해 대던 TV들도 어느결엔가 조용해지고 또다른 먹잇감을 찾느라 바쁘다.

어느새 슬픔을 잊고 생업에 바쁜 서민들은 어깨너머로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모든 사건들은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말초를 자극한다음 망각이라는 지혜로움속에 지워지게 되어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기속에는 사고를 동반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원천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몇가지 사실들을 생각해보자.

사고는 과정에 산물이다!! 어떠한 이행과정 속에 결과가 성공적일수도 사고일수도 있다는 간단한 논리다. 하지만 사고는 태생적으로 사고일 수는 없다 이행 과정에 잘못된 결과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은 운행에 최종적인 책임자인 선장과 승무원 청해진해운일수도 있으나 세월호가 우리바다에 운항할 수 있도록 해준 모든 관계기관 법령들 법령제정에 책임자들 이들모두가 세월호 침몰의 책임자가 아닌가!

이행과정에 참여한 모든 관계기관이나 법령제정자들 심지어 청와대까지도 직접책임자는 아니라는 항변들이다. 한마디로 내 책임은 아니라는 말이다. 잘못했다 죄송하다 죽을죄를지었다 라고 말은 하지만 내 책임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고가 나면 사고조사를 한다 왜냐하면 과정에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 위함이다

법의 공정성이나 냉정함 폭력성은 과정의 결과에만 맞추어져 있어 과정의 결과에는 모두 면책을 할려고 자기의 과오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법의 공정성 속에는 이행과정의 보편성을 인정하기는 하나 법은 과정의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행의 과정을 무시한 사고수습.... 직접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책을 하는 관계기관... 책임을 물어도 하급인사 몇몇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고 법 제정의 원초적인 책임자인 입법기관 행정부에선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대통령의 뒤늦은 담화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산부 ○○경찰청 ○○항만청 해운회사 간의 인맥과 부정한 거래 모두가 세월호 침몰의 책임 당사자인 것이다.

사고수습과 사고책임을 밑에서 위로 물을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책임을 져야 다음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고의 시작과 끝 전말을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선에서 발표하는 것 이것 또한 사고수습에 절대 요소중 하나이다.

과정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감추고 덮고 꼬리 자르고 나에게 불리한 모든 과정을 숨기려하니 의혹의 중폭 속에 행정부를 신뢰하려 하지 않는다. 국회차원의 국정조사를 여야합의 하고 조사한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많은 사연이 숨어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공영방송 K○○ TV는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은 등한시하고 시청료만 인상하겠다고 말한다. 시청료 내는 국민을 속이고 특정인을 선전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차단 왜곡시키는 행위가 세월호의 참사에 또다른 방임 방조자인 것이다. 기득권자들은 이런 행태에서 벗어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존치의 가부를 묻는 것이 민주주의에 본모습인 것이다. 이런 모습이 국민을 결속시키고 절대강국으로 가는 첩경이다.

요즈음 서민의 화두는 국가관이다. 생각도 별로 한적이 없고 왜라는 의문을 곱씹어 본적도 없는 국가와 나에 신뢰 관계를 생각하는 작금이다. 대한민국의 나라라는 틀안에 국민인 나는 나라에 어떤 의무를 하고 있고 국가는 나를 어떻게 대접하는가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요즘인 것이다.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나와 국가간에 신뢰가 금이 가면 나라에 장래가 어찌될까? 생각하기 싫은 결론이다. 국가는 그 틀안에 생명과 재산에 무한책임을 지고 국민은 의무를 수행한다. 이것이 국가와 개인간의 신뢰이다.

위정자들은 제발 이 신뢰가 지속될 수 있는 현명한 처세를 가장 위에서부터 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여물지 못한 생각이 왜 끝을 다듬지 못하는지 역사는 도도히 지켜보고 있음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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