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전호

내가 어릴 적 즉 초등학교 시절에 주로 하던 놀이 문화이다.

이른 봄이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에 동네 몇몇 친구들과 함께 괭이, 삽 등을 들고 뒷동산에 올라가 칡뿌리를 캐러 가는 일이다.

칡뿌리를 캐도 그냥 쉽게 캐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근에 있는 절의 머슴 눈을 피해 가면서 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래몰래 각개전투를 하면서 칡뿌리를 캐다 보면 머슴에 언제 보았는지 소리를 지르면 캐다 말고 도망을 치다 헐떡이는 고무신에 미끄러지고 돌부리 넘어지고 나뭇가지 온몸이 찢겨 온돌은 엉망진창이 된다.

이렇게 몇 번의 숨바꼭질을 하면서 몇 뿌리를 캐서 그 이튿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주둥이를 누렇게 물들이면 나누어 먹곤 했다. 그때 도망가다 넘어져 남 무르팍 밑 상처가 지금도 나를 보면 안쓰러워하고 있다.

여름이면 남, 여 친구를 구분하지 않고 마을 뒤에 있는 방죽에 가서 멱을 감는다.

멱을 감을 때에는 모두 팬티도 입지 않고 그냥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여자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으면서 팬티도 입지 않아 창피한 것 같지만, 그 당시는 서로 어색함 없이 놀았다.

그냥 멱 감으면서 누가 먼저 방죽 건너편까지 가기, 돌을 물속에 던져 놓고 찾아오기 등을 하면서 노는 일이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매일 방죽에서 놀다 보니 수영을 잘해 해군을 갔다 오게 된 동기도 되었고 그때 같이 멱을 감으며 놀던 친구끼리 결혼한 친구도 있다. 고~놈~들 요즘은 동창회 때 놀이 감이 되고 있다. 특히 여자 친구.

가을이면 뭐니 뭐니 해도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라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서리하는 것이 최고였다.

서리 이야기는 서리를 많이 해서 사연이 많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사건을 말하고 싶다. 하루는 일요일이었다. 어머니께는 조깅을 하러 간다고 하고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친구랑 어둠침침한 새벽 아침 일찍 배 과수원을 하는 친구네 배서리 작전에 들어갔다.

사전에 준비한 자루를 들고 배서리를 하는데 갑자기 이놈아! 하는 소리에 머리는 당에 처박고 자루는 뒤로 둘러메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배 과수원 주인인 친구 아버지를 뒤를 쫓아왔지만, 감쪽같이 따돌리고 산을 오르면서 배를 먹기 시작했다.

땀도 나고 목도 말라 무려 10개 이상을 한꺼번에 맛있게 먹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배를 많이 먹은 지라 소변이 마려워 한번 두 번 보았는데 다음은 배에 살살 이상이 오면서 뒤가 마렵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는 때와 마찬가지로 진하고 굵은(?)이었는데 갈수록(?) 이 오줌으로 변하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적마다 앞, 뒤 물총을 쏘아댔다.

이렇게 어렵게 서리를 해서 먹은 배를 앞, 뒤로 다 반납하고 집에 들어오니 어머니께서는 영문도 모르시고 “오늘은 달리기를 많이 했나 보네, 아랫도리가 다 젖은 것을 보니” 뜨~악

겨울이면 마땅한 놀이가 없어 동네 앞에 있는 논에 물을 대고 썰매를 타고 놀았다. 썰매는 양발 썰매와 외발 썰매를 주로 탔다. 썰매를 타다 보면 고무신을 통하여 나일론 양말이 금방 젖는다. 그러면 불놀이가 시작된다. 양말도 말리고 추위를 달래는 불놀이는 무엇보다 재미이었다.

불놀이의 재료는 주로 소똥을 주어다 논두렁에 있는 쥐구멍에다 많이 피웠다.

소똥은 화력도 좋고 잘 꺼지지도 않으면서 구수한 냄새가 솔솔 코끝을 건드리는 최고의 땔감이었다. 한참 불장난을 하다 보면 사방으로 연결된 쥐구멍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나오면 이것 또한 볼거리였다.

이렇게 신나게 놀다 집에 가면 어머니께 매일 혼단다. 사유는 나는 모르는 사이에 귀하고 귀한 나일론 양말과 옷에 불똥이 튀여 터져 있었다.

세월이 흘러 썰매 타고 불놀이하던 그곳에서 중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장만한 스케이트를 온종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스케이트를 탄 결과 동네 대표로 나가면 대회에서 1등도 했다.

이렇게 낭만과 추억이 새록새록 한데 그 놀이터는 온데간데없고 고층 아파트만 가득하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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