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맹동면 대동로 거주)

엄동설한의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들어설 때, 편지함에 꽂혀 있는 편지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오랜만에 내 이름 석자가 적힌 흰 편지 봉투, 발신지는 부산. 호기심과 즐거움이 교차하며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25살의 처녀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K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내일은 푸른 하늘’이란 프로가 있었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는 장애인이나 투병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방송이다.

그 프로에 생활 수기 모집이 있어 나는 글을 보냈다 .

그때 난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누구보다 많이 공감했기에....

내 수기가 방송되면서 그 방송을 듣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인연이 되었던 젊은 청년의 한 사람. 그 후 그와 서로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몸이 불편한 소아마비와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소개와 함께....

나의 편지를 받고 또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하루에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적어 보냈던 젊은 청년. 나 역시 20대의 젊고 풋풋한 마음을 늘 꽃편지지에 담으며 서로 많은 생활에 삶을 일기 쓰듯이 보냈던 수많은 사연들.

많은 편지가 오고 갈 즈음 만나자는 제의와 함께 그가 부산서 청주로 오기로 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를 만났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걷기조차 불편한 너무나 심한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불편한 몸으로 청주까지 오게 한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그와 다방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같은 나이로 몸은 불편하지만, 피끓는 청춘에 대한 희망적인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노력해서 낙오하지 않고 꼭 성공할 것이라는 힘찬 각오를 말할 때 그의 눈빛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그 후 많은 편지가 오고 갔지만, 어느 날부터 서서히 인연의 끈은 가늘어지고 있었고, 단 한 번의 만남과 150여 통의 편지로 우리에 편지 교환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런 그가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할 만큼 세월이 흘러간 지금. 이젠 그 이름조차 희미해진 아득한 세월에 ‘어떻게 주소를 알고 편지를 보냈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편지 내용을 보고 참으로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는 재활을 열심히 해서 몸도 많이 좋아졌고, 목공예를 배워서 큰 공예점을 냈다고 한다.

결혼해서 자녀 2명과 함께 가정도 잘 이루고 아주 행복하다는 아름다운 글이었다.

문득 옛날에 내 편지를 보면서 인생 성공담을 꼭 들려주고 싶어 이렇게 글을 보낸다는 내용, 글을 읽고 난 후 알 수 없는 감동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의 편지를 읽으며 "하면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에 삶이 때로는 힘들지라도 산등성이 바윗 틈에서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랭이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으면....

인생의 긴 여로에서 시들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젊은 날에 아름다운 눈빛도 때로는 그 누군가에게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고진감래에 편지 글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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