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섭 해오름학원 원장, 수필가

 

 
 

연휴가 끝났습니다. 집집마다 연휴동안 쌓아놓은 쓰레기를 내놓느라고 엘리베이터는 시도 때도 없이 분주합니다. 수거차량이 오는 날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집안에 그냥 보관해 달라는 안내방송을 연신 하느라 경비원 아저씨도 매우 바쁩니다. 인간이란 원래 쓰레기 만들어내기를 본분으로 태어났는지 아파트단지 내 분리수거장에는 온갖 쓰레기로 넘쳐납니다.

1995년 우리나라에 쓰레기종량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돈을 내야하는 시대입니다. 20여년이 경과한 현재 쓰레기분리배출은 이제 모든 국민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음료수 한 캔을 먹고 버릴 때도 캔 분류함인지 아닌지 먼저 살피는 행동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는 주방용세제를 묻히기 전에 음식물찌꺼기를 물로 먼저 그릇에서 씻어내고 잔반을 한데모아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담습니다. 음식물쓰레기를 건조시켜 퇴비로 재활용하는 장면을 TV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심히 종류별로 분류해서 쓰레기를 내놓고 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는 길에 쓰레기수거트럭이 길목을 막고 수거작업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수거반원들은 분주히 쓰레기들을 트럭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스티로폼, 화분 조각 이런 것들이 아무 구분 없이 한데 뒤섞여 실렸습니다. 매일 종류별로 분류해서 내놓은 수고는 아무 보람이 없이 트럭에 휙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집에서 쓰레기 분류를 그다지 성실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비닐봉지나 휴지가 섞여 들어가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어차피 한데 뒤섞여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고 말텐데 이것저것 신경 써서 분류해 내놓는 것이 헛수고처럼 느껴졌습니다.

학원에서도 분류함을 몇 개 두고서 종류별로 모아 내놓곤 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대충대충 담아서 버렸습니다. 빈 캔이나 음료수 병이 일반쓰레기봉투에 들어가 있어도 눈감고 돌아섰습니다. 아이들이 “이거 어디에 버려요?” 물으면 그냥 아무데나 던져 넣으라고 말하고 어디에 넣는지 확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학원에 등록을 하고 공부를 하러 왔습니다. 교실 문 앞에서 음료수 캔을 보이며 “어디에 버려요, 선생님?”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복도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한참동안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복도를 내다보니 아이는 나란히 놓여있는 두 개의 쓰레기통을 번갈아 살피며 어디에 캔을 넣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동그랗게 뜬 아이의 눈과 마주치자 선생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다시 열심히 쓰레기를 분류해서 내놓습니다. 아무렇게나 섞여서 매립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분류를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다음 처리도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음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