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수필가 소이우체국 근무

 
 
 매일 접하는 소식이 있다. 하루건너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를 경악시킨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해하는 이들의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말한다. 전에는 원한이 있거나 변심한 사랑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었는데 요즘은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냥 화가 나서, 욕구를 이기지 못해 일을 저지르고 있다.

거기에는 사회적약자인 여자와 노인이 희생양이 되어 안타깝다. 외지에 나가있는 딸들을 둔 부모들은 마음을 놓지 못한다. 하물며 밤늦게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겁나고 혼자 밖에 나가기도 무섭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 범죄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은둔의 시작은 가족과의 대화단절에서 오는 것이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쌓기 시작한 담은 친구와 이웃으로 늘어나 세상과의 차단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는 세상이 자기를 버렸다는 피해의식에 빠져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과대망상에 젖어있다.

이들에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 누구도 없다는 게 문제이다. 소통이 없으니 폐쇄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속에 외로움은 장마 진 하천의 물처럼 불어난다. 이 외로움이 사람을 괴물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차오르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어쩌면 이렇게라도 자신의 존재를 표출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자살징후를 남기듯이 그들도 처음에는 외롭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아는 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 주었다면 끔찍한 일들을 막을 수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모두가 외면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우체국 앞에는 호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은 알 수 없지만 그 자리에 서 있은지 꽤 오래되었다. 해마다 잎이 무성하여 주인 할머니에게도 호두도 제법 안겨 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지난해에는 잎을 하나도 틔우지 않았다. 모두가 죽은 나무라고 했다. 사람들은 벼락을 맞았느니, 동해를 입었느니 분분했다. 나는 여름 내내 앙상한 가지를 하고 있는 나무가 보기 싫어 베어버렸으면 했다. 어쩐 일인지 주인 할머니는 나무를 일 년 동안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다시 올해의 봄이 와서 동네 뒷산을 보다가 시야에 걸려든 나무가 있었다. 어느새 잎을 달았는지 나무가 온통 초록을 뒤집어 쓰고 있다.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이 베어버렸다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뻔 했다.

거칠고 사나운 사람도 그 폭력적인 성품 바로 아래에는 공포가 있다고 한다. 그 공포 아래에는 어렸을 때 받은 깊은 상처와 연약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화가 화산으로 폭발하기 전에 열로 들끓고 있을 때 우리는 알아차려야 했다. 사회가 일찌감치 그들을 만나고 보듬는 일에 나섰다면 그들이 늑대가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안에 갇혀있는 외톨이들을 포기하지 말고 밖으로 불러내 사랑과 관심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 주어야 한다. 다 죽어 보였던 호두나무가 잎을 틔웠듯이 그들의 가슴에도 사랑의 싹이 올라오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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