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영 전 청주고 교장, 칼럼

 
 
 삼복염천에 힘들게 보낸 여름이지만 중추가절을 보내고 계절의 변화 속에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고희(古稀)의 고개를 넘어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채근담에 세월의 흐름이 빠름을 “부싯돌 불빛(石火光中)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백거이(白居易)는 세월의 흐름이 빠름을 “돌이 마주 부딪칠 때에 불빛이 한번 번쩍 했다 곧 없어지는 것과 같다” 해서 석화광음(石火光陰)이라 했고,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흰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고 했다.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의 자세로 인사(人師)의 길을 걷겠노라고 들어선 교직(敎職)생활에 이룬 것 없이 보낸 30여 성상을 지내고 한국일보시행 제22회 “한국교육자대상(韓國敎育者大賞) 스승의 상” 시상식에서 제자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보니 이게 출람지예(出藍之譽)의 기쁨인가 하면서도 부끄럽기 그지없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된 13년 전의 시간들이 스쳐간다.

교직의 보람을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는 “청람어람(靑出於藍)이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스승보다 우뚝하게 성장한 모습만 보고 기쁨을 느끼는 게 교직이 아님을 절감하게 했다.

13년전에 청주고 교장으로 부임 후였다. 지난날 청주고 교사시절 담임을 맡았던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소식 모르고 지냈는데 졸업 후에 실명(失明)을 해서 한 때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불행을 이겨내고 안마 기술을 익혀 열심히 살아가는 중 우연히 고교시절 선생님을 만나서 내 안부를 듣게 되어 전화를 드렸다는 그 간의 소식이었다.

“행(幸)과 불행(不幸)이 어우러져 있는 게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제자 앞에 닥친 불행이 가슴을 아프게 하며 불행을 딛고 일어서서 살아가는 제자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소식(蘇軾)은 설니홍조(雪泥鴻爪), 홍조(鴻爪)가 눈 위에 발자취를 남기나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것과 같이 인생이 허무함을 노래했고, 회남자(淮南子)는 생기사귀(生寄死歸)라고 “삶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본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속절없는 세월 속에 덧없는 인생, 바람결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떠나가는 가을에 제자의 건강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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