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 정 수필가 소이우체국 근무

 
 
“쿵” 하는 순간 아득했다. 무슨 소리지 하면서도 사태파악이 되질 않았다. 잠시 공황상태가 된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내차를 박은 것이었다. 차문을 열고 나가니 남성운전자는 다짜고짜 고함을 질러댔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왔다.

여성이라고 깔보는 것인가. 요즘은 몰상식한 사람들이 드문 걸로 아는데 이런 사람이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사람이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보고 살피는 게 예의이건만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려는 그 사람이 괘씸했다. 누가 보아도 뒤에서 받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

“지금 잘못을 해놓고 저에게 큰소리치는 건가요. 사람이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닌가요” 나는 화를 냈다. 그래도 그는 투덜투덜 혼자 지껄이고 있었다. 나는 .보험회사의 출동을 기다리면서 차의 상황을 찍었다. 내차의 뒷부분이 말이 아니었다. 뒤를 몽땅 갈아야 하는 상태였다. 몸은 아픈지 모르겠는데 마음이 아파왔다.

나의 애지중지하던 애마를 저렇게 망가뜨려 놓고 사과를 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화가 치밀었다. “내 차 어떡해요. 새로 산지 3개월 밖에 안됐단 말이에요. 난 몰라요” 속상한 마음을 퍼부어댔다. 한참 소리치다 보니 어디서 들어본 익숙한 소리였다.

3개월 전의 사고로 이 차를 산 것이다. 내가 앞 차를 박아 나의 아반떼도 폐차를 했고 상대방의 차도 몹쓸 정도로 부서뜨린 것이었다. 그 여성 운전자가 하던 말이었다. “이거 뽑은 지 얼마 안 된 새 차예요. 어떡해요” 그때 나는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보험만 믿고 고쳐주면 되지 하는 마음이었다. 상대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릴 생각을 못하고 은근히 배짱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똑같이 겪어보고서야 알게 되는 상대의 입장. 나만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억울할 일은 아니다. 준만큼 돌려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나는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쭈그려 앉아있으니 렉카가 제일 먼저 달려온다. 오자마자 나의 몸 상태부터 물어온다. 그리고는 상대의 과실이 100%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킨다. 직업의식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불안한 나는 그분들 덕에 진정할 수가 있었다.

사고 수습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그 사람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용서하기 싫었지만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또 한사람에게 같은 상처를 주었고 그 상처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거절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드라마의 명대사중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란 말이 있다. 이 달달한 말은 연애뿐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모든 관계에서 쓰여져야 할 명대사다. 내가 아프면 상대방도 아픈 법이다.

쉰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내 아픔만 더 커 보이니 성숙은 언제 다 여무는 것인지.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인 배려를, 지금도 나는 애마와의 이별과 새 애마의 상처를 통해 아프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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