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심 | 劉南心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 남편이 이루어 주었으면 하는 꿈,

내 아이들이 이루어 갔으면 하는 꿈, 때때로 이루지 못한 꿈으로 인해 실망하기도 하지만 마음으로 그리는 세상은 언제나 맑음이기에 끊임없이 꿈을 키우며 행복한 공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어제는 대학에 입학한 우리 쌍둥이들에게 문중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러 갔다. 문중 사무실로 가는 길은 정체가 심했다. 오후2시가 다 되어 배에서 꼬르륵 신호가 올 때쯤 회장님이 운영하는 회사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장학금 수여식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곳이 중국집, 늦은 점심이라 근사한 만찬을 기대했던 우리에게 회장님은 자장면과 짬뽕 중에서 주문을 하라신다. 그쯤 되면 눈치껏 자장면으로 통일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인지 다들 자장면을 주문하는데 우리 쌍둥이는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코스 요리 쪽에서 시간을 끈다. 민망해진 내가 얼른 메뉴판을 낚아채듯이 내려놓으며 자장면으로 통일했다.

 명문 대학의 교수를 겸직하며 건축회사를 꾸려가기까지의 고생담과 음식에 대한 소중함,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앞으로 이루어야할 꿈과 도전 ,여성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이 자장면에도 문중 어른으로서 해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구나 싶은데 우리 딸들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본다. 기말고사 기간인 것이다. 한 시간이 아깝다는 듯 눈짓 몸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끝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문중의 자랑이 되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끝으로 일어서려는데 다시 회사로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란다.

차 한 잔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문중에서의 인재발굴에 대한 이야기며 어려운 시대를 굳건하게 지켜온 문중 어른들의 이야기와 문중 살림에 대하여... 차 한 잔은 실로 문중의 역사를 정리하고 계획하는 우물 같은 것 쌍둥이들이 드러내놓고 연신 시계를 들여다볼 때쯤 다음 약속을 핑계로 오늘의 행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우리식구만 남게 되자 고작 백만 원씩 주면서 시간 다 갔다고 딸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고작 백만원’이라는 말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게는 아직도 가슴 떨리는 액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머닛돈 취급하는 아이들 ,약속이나 한 듯이 맞장구를 치는 딸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생이 되고나서부터 다 큰 어른이 된 것처럼 제 멋대로 해석하고 세상을 가볍게 보는 것이 괘씸하다. 땀 흘리지 않고 용돈을 받아쓰게 한 것이 문제였었나? 고민을 하게 된다.

내리는 빗속에서 소리 없이 내려앉는 먹구름처럼 시커먼 내 속마음에도 화가 났다.

장학금 받는 날을 통보 받으면서“하필 시험기간이네”하며 투덜거렸었다. 대리수령이나 자동이체 방법 같은 것을 택하지 않은 문중 집행부가 내심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신과의 자장면 한 그릇으로 눈 녹듯 얄팍하게 뒤집어진 내 줏대 없음이 부끄러웠다. 입시라는 큰 산을 앞에 두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에 너그러웠던 자신을 시절 탓으로 돌리며 흘려보낸 시간들이 되새겨진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는데...

멀리보라고 ,높이 날라고 빌고 또 빌었건만 앞만 보고 있는 것 같은 우리 딸들,

지나간 공익광고가 자꾸 내 마음을 두드린다. 부모와 학부모의 이야기다. 유치원원장으로서 나는 학부모들에게 멀리보라고 부모역할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들 앞에서 어느 순간 학부모가 되어버릴까 두렵다 그래서 자주 주문을 걸어야겠다. 앞만 보라 하는 학부모, 앞서가라 하는 학부모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 학부모가 되지 않기를, 실천하는 부모가 되게 해 달라고..부모와 학부모 사이를 드나들면서 이중성을 보인 내 모습을 감추고 아이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같아 조금 미안하다.

전철역을 향해 뛰어가는 딸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시험 끝나거든 용돈기록장 결재 맡으러 와”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영수증처리가 안된 돈이 백원만 있어도 더 이상의 용돈 지급은 땡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번 방학때는 아르바이트를 권해서 한 학기 용돈을 직접 벌어보게 해야겠다.

돈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부터 바로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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