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명순 수필가

 

 
 

사람들은 나를 보면 농사꾼 같지 않다 말한다. 남편 좀 그만 부려먹으라 하니 난감하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시골아낙들은 겉보기에 편해 보이는 내가 달갑지 않은 것일까.

결혼하고 시댁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 키우며 식사 준비와 밭일까지 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힘들고 비중 있는 일은 주로 남자가 한다지만 주부들이 하는 일은 쉴 새가 없다.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왜 그리 싫었을까.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어 밭에 가는 횟수를 줄였다. 웬만하면 집안일만 하고 들일은 내 일이 아니려니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올해 3월, 2천 평이 넘는 땅에 복숭아나무를 더 심기로 했다. 지인이 농사를 짓지 않아 우리에게 빌려주었는데 1천 평 정도의 땅은 몇 해 묵어 불을 내야 한단다. 잡초뿌리도 죽이고 오래 된 비닐을 태우기 위해 마을주민과 산불지킴이 요원의 도움을 받았다. 내 키보다 더 큰 풀대들은 겨울을 몇 차례 이겨내고 터줏대감이라도 된 듯했다. 쉽게 꺾이지 않을 뿐더러 잘 타지 않았다. 불씨가 산으로 옮겨 붙을까 싶어 조심하면서도 불 속에 품은 내 꿈은 더 선명해졌다.

마을 이장님이 트랙터로 갈아주니 밭 모양이 드러났다. 논이었던 밭이라 물이 많았다. 나무뿌리가 얼지 않도록 하려면 유공 관을 땅에 묻어 물길을 잡아주어야 한다. 남편이 미리 정해 놓은 기준선을 따라 굴삭기 기사가 땅을 파주면 우리는 무겁고 긴 관을 들어 옮겨 연결을 했다.

농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해야 되는 일이 더 많다. 밭 정비 하느라 몫 돈을 쓰고 있어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일꾼을 구하지 않아 몸은 더 지쳐 갔다. 무릎에 염증이 생겨 다리를 구부리기가 불편하다. 약을 먹어가며 일을 하지만 내 일이라 생각하면 서글퍼할 새가 없다. 아들 셋을 키우려면 별 수 있으랴.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었듯 지금은 나도 변했다. 일 년 내 일해도 여름 한 철 소득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 수익을 늘려야 그나마 밑천이 바닥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농한기에 쉬지 못하고 용역 일까지 나가는 남편의 고생이 줄었으면 하는 마음 크다. 공기 좋은 곳에 땅을 사고 새 집 지어 사는 행복을 우리도 손에 꼭 쥘 날이 올 것이다. 소홀히 여겼던 일이 오로지 내게 달려 있는 듯 해 비라도 와서 밭으로 가지 않는 날은 남편 눈치도 살핀다.

남편과 옥천 묘목시장에 다녀왔다. 묘목시장은 봄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전국에 복숭아 농가가 늘어난 지 오래되었고 포도농가나 사과농가도 복숭아로 바꿔가고 있는 추세이다. 복숭아를 심는 농가가 많아 수익성을 보장받지는 못해도 우리가 해봤던 것을 해야 손해가 적어 복숭아를 늘리기로 한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열대과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산과일의 소비가 줄고 있다. 복숭아도 신품종이 늘어나 묘목 가격의 차이가 많이 난다. 새로 나온 품종 중에 맛이 좋고 시기에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이 우선이다. 토질과 기후에 맞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묘목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미니사과 묘목까지 구입하며 이미 집짓기를 상상하는 나를 남편은 알까.

두둑위에서 줄자로 간격을 맞출 때 삽질 흉내를 내며 하루 종일 뒷심부름을 해도 힘들지가 않고 즐겁다. 우리는 미리 파 놓은 웅덩이에 묘목을 세워 물을 주고 흙으로 덮어 밟아주었다. 새로 사온 복숭아 묘목들이 새 터에 자리를 잘 잡았다.

복숭아나무는 꽃을 피우기 위해 여름에 꽃눈을 만들어 능력을 갖춘다고 한다. 식물들이 살아가는 전략이 다 제각각이듯 나 또한 내 역량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겉모습이 가짜인들 진짜인들 의미는 크지 않다. 진짜농부들의 눈에 농사꾼으로 눌러 앉기에는 난 아직 멀었다. 몸이 피곤해 파김치가 되어도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할 때면 마냥 좋은 것을 어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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