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돌돌 ..... 어처구니를 잡았다

--맷돌

 

문근식 시인/남영환경 대표
문근식 시인/남영환경 대표

깜박 잠이 들었을까. 달달달 맷돌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나절 물에 담가둔 메밀을 어머니께서 갈고 계셨다. 커다란 대야에는 불어난 메밀이 가득했다. 도저히 줄어들 것 같지 않던 메밀이 서너 시간의 고통을 견디고서야 어머니의 마지막 숟가락을 떠났다.

“팔 아프지?“

어머니의 짧은 말 한마디에 하얀 메밀의 속살이 힘겹게 돌아가는 맷돌 가장자리를 슬프게 흘러내렸다.

지금처럼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 우리 6남매에게 부침개며 손두부, 그리고 갖가지 간식거리를 제공해주던 맷돌이다. 시큼한 김치를 쭉쭉 찢어 얹은 메밀부침개가 빨리 익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젓가락을 들고 어머니 주위에 둘러앉았다.

“첫 소댕이 먹으면 머리 나빠진다. 얼른 할아버지 갖다 드려라”

늘 첫 번째 부침개는 할아버지 몫이었다. 먼저 어른부터 드려야 한다는 무언의 교육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행동이 몸에 밴 이후였다. 지금 첫 소댕이를 앞에 놓고 마주앉은 아내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아내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중학교 1학년 때쯤인 것으로 기억난다. 저녁 무렵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와 팔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두세 번 연거푸 지면서 어머니의 든든한 울타리를 확인하던 날, 한참을 지나 그 울타리가 땀과 고통으로 엮어졌다는 걸 알게 된 날, 이미 어머니는 세상의 울타리 밖에 서 계셨다. 그날 이후 내 가슴에서 어머니의 맷돌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움은 늘 한가한 시간에 찾아온다. 그때마다 아내에게 부침개를 부탁해보지만 어머니의 손맛은 아니다. 고통과 이야기 그리고 땀 방울이 뒤섞여 빗어내는 이 세상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그 맛, 지금 내가 느끼는 그리움의 맛이다. 아내가 만들어준 부침개에 잠시 눈을 붙였을까? 마루에서 맷돌을 돌리던 어머니 모습이 실루엣처럼 낮잠 속을 지나간다.

골동품이 가게 앞을 지나다 아무렇게 놓인 맷돌을 발견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할 일이 아직 많은데 못다 한 이야기 아직 많은데 세상 가장자리에 서 계신…….

어처구니를 잡았다. 그때 맷돌을 돌리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기억 속에서 재생된다. 앞마당 감나무에서 참매미가 울어댄다.

“근식아 팔 아프지?”

 

그 짧은 한 마디가 아득한 시간의 도화선을 건너와 귓전에 이명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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