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지원과장

 
 

90대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알아 누웠다. 부인은 죽고 아들내외, 손자들과 같이 살고 있으나 누구하나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밥상 한번 차려주면 아이들은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고 며느리는 시장으로 친구 집으로 놀러 다닌다. 노인은 냄새나는 방에서 하루 종일 혼자 지내고 있지만 사람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며느리가 와보니 맏동서가 아버님 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 괴이한 일이 다 있다고 의아해 했으나 사실 노인은 며느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던 것이다. “내가 머리맡에 돈을 놓아 둘 것이니 네가 방에 들어올 때마다 천 원씩 가져가도록 해라.”였다.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만나면 용돈이 오고 간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사탕도 사주고 용돈도 건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것은 그 들에게는 큰일이고, 이것을 벌기 위하여 노인들은 농사일도 하고 품도 판다. 한편, 성장한 자식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은 부담이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옷이나 고기 등을 사다 드리면 좋아하셨으나 요즘은 노인들이 어울려 노는데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70대 노인이 50살 실업자 아들의 용돈을 마련하고자 농장으로 새벽에 출근한다는 얘기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젊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인의 지론이다. 이러시지 말라고 말리는 자식의 마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저 고맙기만 할 따름이다. 취업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아무데나 취직해서 일할 수는 없고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 우리들의 젊은 세대이다. 50대의 재취업은 더욱 힘들다. 한편 노인들은 원래부터 해오던 일이고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세상 살기가 원래 어렵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부모와 같이 사는 자녀들은 거의 없다. 부모도 성장한 자식과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 객지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통례이다. 자식이 객지에서 잘 지내는 지도 걱정되고 힘든 일이지만 자식이나 손자들의 얼굴을 한번 보려면 명절이나 행사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요즘 학생들도 공부에 바빠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올새가 없고, 입시 때가 되면 더욱 만나볼 생각을 못한다.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를까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이 올 때를 대비하여 몇 푼이라도 보태주고자 일을 하고, 자식들이 준 용돈도 모았다가 다시 준다.

과거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했다. 딸을 주고 맺어진 인연으로 평생 손님으로 무상출입 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요즘 자식들이 그렇다. 자식은 영원한 손님이다. 그 들은 본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부모님 집이라고 생각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주는 용돈이 어딘지 모르게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자식이 어렵게 마련한 돈을 받아쓰는 것도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자식의 용돈을 받을 정도로 “내가 무능하고 무기력해 졌나!”하는 쓸쓸함이 앞서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식이 오면 손주들 용돈도 주고 생활비도 좀 보태주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용돈을 미끼로 손주들이 얼굴이라도 자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좀 넉넉했더라면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식들 과 손주들의 교육비라도 책임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어 갈수록 우리들 어르신들의 자식들 얼굴한번 더 보고 싶어 하고 가족애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야속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한번쯤 꼭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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