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라는 격언이 있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가는 것은 쉽지만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격언의 의미를 교육에 비유해 보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수는 있지만 제자가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인 것 같다.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교육 방법인 ‘산파술’에서 말하기를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지, 출산이 더디다고 해서 산모 대신에 아이를 낳아줄 수는 없다. 아무리 고통이 크더라도 아이는 산모 자신의 힘으로 낳아야만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진리라는 옥동자는 배우는 사람 스스로에 의해서 산출되는 것이지, 선생님이 대신해서 낳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해서 남 주니? 너 좋으라고. 네 장래를 위해 하라는데 왜 그리 딴 짓만 하니? 너 공부 잘하면 엄마가 좋은 거니? 너 좋은 거지!” 우리 어머니들은 항상 자녀들에게 이렇게 훈계하시는데 목이 말라야 물을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지 물가로 끌고 갔다고 물이 먹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시인 에머슨의 집에서 있었던 실화다. 에머슨이 그의 아들과 함께 송아지를 외양간에 집어넣으려고 아들은 앞에서 끌고 에머슨은 뒤에서 밀었다. 그런데 부자가 힘을 다했지만 송아지는 네 발을 딱 버티고는 좀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아일랜드 출신 부인이 이 광경을 보고 달려왔다. 땀을 닦고 있는 에머슨 부자 앞에서 송아지 입에 손가락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다정스럽게 대해 송아지가 스스로 외양간으로 들어가게 하더라는 얘기다. 그녀는 에머슨처럼 멋진 시를 쓸 줄 몰랐지만 송아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정만 해도 그렇다. 자녀를 강제로 끌고 가는 식의 가정교육은 부작용이 많다. 자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잘 알아서 나름대로 흥미를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란 TV프로에서 언젠가 두 발을 들고 걸어가는 개를 본 적이 있다. 개가 두발로 걷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평범한 애완견이었는데 주인이 훈련을 시켜서 두 발로 걷게 만들었던 것이다. 두 발을 들고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그 개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보너스로 제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칭찬과 보상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자 그 개는 서있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두 발을 들고 귀엽게 걷는 시간도 점차로 연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 조련사들은 칭찬과 보상이라는 도구를 갖고 사나운 동물들을 훈련시킨다고 한다. 잘못하면 깨달을 수 있도록 타이르고, 잘하면 기분 좋게 칭찬하면서 그에 합당한 음식을 제공한다. 칭찬과 보상에 길들여진 동물들은 더 많은 칭찬과 더 좋은 보상을 받기 위하여 조련사의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하고 뭔가 보상을 받게 해주면 사람도 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법이다.

부모의 바람과 주장 보다는 자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장래 비전은 무엇인지, 자녀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해하고 좋은 느낌을 갖는지를 살펴 자녀가 바라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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